[농민칼럼] 안전의 늪에 빠진 친환경농업

  • 입력 2022.06.05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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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해마다 말아먹는 작물이 한두 가지는 생긴다. 올봄은 노지 양상추 200평을 말아먹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결정적 한 방은 (친환경) 인증을 놓쳐서다. 기존 인증에 없는 품목은 품목추가 절차를 밟아야 되고 그 시점이 작기의 3분의 2를 넘겨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그걸 깜빡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인증 신청은 했으나 인증이 나오는 날짜는 한참 먼 상황에서 고온에 약한 양상추는 녹아 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먼저 아직도 그거 하나 못 챙기냐 하는 심한 자책. 다음으로는 해마다 규정이 늘어나면서 점점 빡쎄지는 인증제도에 대한 원망. 그 다음으로 도대체 왜 인증제도가 빡쎄지는지, 맨날 새로운 규정을 추가로 만들어 내는 주체는 누구인지,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

기왕에 버린 몸 하나씩 짚어 보자. 인증제도는 왜 빡쎄지는가. 이래저래 짚어보다 보니 핵심이 안전제일이어서다. 친환경은 안전한 농산물이어야 하고 그러면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백수십가지 농약이 영점영영영영…일도 나와서는 안되고 농사과정에서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 소지가 있는지 점검해야 되니 영농일지에 모든 과정의 안전성과, 투입물의 안전성과, 사용자재의 안전성과, 주변환경의 안전성과, 농업용수의 안전성과, 기타 등등의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하고 안전성을 확인해줄 확인서를 확보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이 규정을 만들어내고 시행하는 주체는 누구며 왜 그렇게 안전에 집착하는가. 여기저기 물어보니 짐작대로 칼자루는 관료들이 쥐고 있는 것 같드만. 농사꾼들은 그 과정에 끼지도 못하고.

칼자루 쥔 주체들은 안전만이 친환경농업 본연의 정체성이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글쎄다. 실은 농산물의 안전을 앞으로 내세워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은 거 아닌가? 이러저러한 규정들을 만들어서 안전성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고 ‘앞으로도 말씀만 하시면 계속 만들겠습니다. 그 제도를 따르지 않는 농민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부운!'’

어쨌든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장치해 놓은 감사와, 순환보직과, 기본 행정의 틀 속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국민 여론을 살펴 정책과 규정 속에 그런 것들을 담아내려 애쓰고 있다고 본다. 일부, 아주 부분적으로 보신적 처신들이 전혀 없을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문제 해결의 첫 단추로 반성의 시간이다. 친환경농업이 안전한 농업이라는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저에는 우리나라 친환경농업의 시작이 농약의 피해에서 자유롭기 위해 시작된 태생적 원인이 있긴 해 보인다. 거기에 친환경농업과 비슷한 시기에 태동되어 서로 의지하며 같이 성장해온 생협 조직의 성장동력 역시 ‘안전한 농산물’이지 않았나. 친환경농업이 지속가능과 안전의 두 날개로 나는 새라 치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다보면 거기에 안전도 보장되지만, 안전에 방점이 찍히면 물질순환과 자연 생태계와의 조화를 수단으로 삼는 지속가능은 점점 어려워지고 그럴수록 안전의 여지들은 점점 줄어드는 게 이치인데 그걸 놓친 거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생산 현장에는 ‘저는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짓습니다.’ 소비 현장에는 ‘우리 생협 매장은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안전한 농산물만을 공급합니다.’ 이런 선정적 구호 말고 뭐 있었던가.

이런 구호들이 일반 농산물보다 못났어도 판매될 수 있게 하고 조합원을 팍팍 늘리게는 했지만 점점 안전의 늪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게 한 원인이라 판단돼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젠 거기서 벗어나 진정한 핵심이 뭔지에 대한 고민을 하자는 이야기다.

관료들 욕하기는 쉬우나 욕해서 해결될 사안들은 별로 없고 있어봤자 임시방편이더라가 내 경험상 판단이다. 요즘 세상에 체계안정적으로 정교해진 제도 권력에 그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체는 대다수 유권자인 소비집단이고 그 분들한테 그동안 안전만 지켜지면 된다는 오해를 사게 한 친환경농업계가 새로운 각성을 해야 꼬일 대로 꼬인 친환경농업판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되지 않겠냐는 이야긴데….

아이고. 나도 잘 모르겄네. 이런 이야기들이 씨알이 먹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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