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청계천⑥ 동대문 너머로 날아간 방패연

  • 입력 2022.05.29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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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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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겨울이 왔다.

눈발이 날리고 흐르던 물이 얼어붙으면, 천변 아이들은 너나없이 청계천으로 내려가서 썰매도 타고 팽이도 쳤다. 그런 모습이야 어느 지역의 하천을 가나 공통으로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으니 특별나다 할 것은 없었고….

이성선 원장은, 천변 사람들이 즐기던 여러 겨울 놀이 중에서 단연 백미는 청계천의 다리 위에서 열띤 각축을 벌였던 연싸움이었노라 회고한다. 연을 날리는데 중요한 조건은 두 말 할 것 없이 바람이다. 그런데 주변 마을에는 바람 한 점 없는 날도, 청계천 다리에만 올라서면, 주교동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개천을 따라 서풍이 풍성하게 불어왔다. 일종의 골바람이다.

어느 겨울날 이각선‧이성선 형제는 제가끔 가오리연과 얼레를 챙겨들고 천변으로 나섰다. 그때 동네 청년 두 사람이 바윗돌에 무엇인가를 올려놓고는 일삼아 망치로 깨부수고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사기그릇 조각, 사금파리였다. 다 큰 청년들이 별일이다 싶었다.

-왜, 소꿉놀이 하는 것 같으냐? 모레 우리 주교동 청년들하고, 장사동 청년들하고 청계천 다리에서 연 따먹기 시합한단 소리 들었지? 작년에 연줄 끊기 시합 하는 것 못 봤어?

-아, 작년에 봤어요. 하지만 연줄 끊기 시합을 하는데 사금파리 조각은 왜….

-시합에서 이기려고 우리가 지금 무기를 만드는 중이란다.

-에이, 사금파리 조각으로 어떻게 무기를 만들어요?

-미리 알면 재미가 없으니까, 두 밤 자고 여기 나와서 연싸움 하는 것 구경이나 하렴.

“생선의 내장 중에 부레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녹이면 아교풀이 돼요. 부레를 녹일 때 사금파리 가루를 잘 섞어서 반죽을 해요. 그 반죽을 연줄로 사용할 실에다 잘 바르지요. 사기 조각 말고 유리 조각을 잘게 부숴서 대신 사용하기도 했어요.”

청년들이 편을 갈라서 하는 연줄 끊기 놀이는 보통은 정월 대보름을 하루 이틀 앞두고 열렸다. 여느 날엔 천변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다리 위에 올라서서 한가롭게 가오리연을 날리고 놀았지만, 대결이 펼쳐지는 그 날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남녀노소 구경꾼들이 천변으로 모여들고, 대표선수 격인 양쪽 동네의 청년들이 큼지막한 방패연을 들고서 동수(同數)로 다리위에 늘어선다. 물론 사금파리나 유리를 가루 내어 바른 연줄을 무기 삼아 얼레에 챙겨 감고서.

이윽고 시작 신호가 울리고 선수들이 연을 날린다. 연을 공중 높이 올리는 것도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더러는 날아오르는가 했더니 맥없이 가라앉기도 하고, 이십여 미터를 잘 올라가다가도 세찬 바람을 만나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드디어 한참 만에 타르르르…얼레에서 연줄 풀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또 한참만이면 까마득한 공중으로 올라간 방패연들이 더는 오를 곳이 없다는 양, 수리처럼 떠서는 유유히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제 싸울 차례다.

-제일 높이 오른 방패연이 누구 연이야? 우리 동네 연 맞지?

-와, 그 옆으로 장사동 연이 바짝 붙었다. 지금이야, 연줄이 서로 얽히게 자리를 옮겨!

선수들이 상대편 연과 줄이 서로 얼크러지도록 얼레를 들고서 일부러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자, 지금이야. 잡아 채!

구경꾼들 모두가 하늘바라기를 하고서 소리를 질러댄다. 드디어 선수가, 낚싯줄 잡아채듯 얼레로 몇 차례 챔질을 하자, 상대편 연줄이 뚝 끊어진다. 줄이 끊긴 방패연이 팽팽하던 긴장을 놓아버리고는, 이윽고 너울너울 하늘 저 편으로 자지러든다. 응원석 한쪽에서 함성이 터진다.

어차피 정월 대보름이 되면 모든 연들은, 띄우는 사람들의 소망을 안고서 하늘 저편으로 날려 보내졌다. 서울에 이층집도 거의 없던 시절, 멀리 우뚝 솟은 동대문 너머로 가물가물 멀어지는 연을 바라보면서 이성선 어린이는, 얼른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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