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촌이라는 직장

  • 입력 2022.05.29 18:00
  • 수정 2022.05.31 08:4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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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면접도 가기 전에 사전에 정보를 파악해 ‘안될 곳’은 애초 걸러버리는 요즘 우리 또래들의 습성(이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은 요즘 취업 시장을 구인난과 구직난이 공존하는 모순된 세계로 만들었다. 존중받지 못하는 일에 투신했다 몸과 마음을 망칠 바에는 아르바이트나 플랫폼 노동을 하고 말겠다는 이 새로운 발상은, 지난해 단순노무직 취업자가 40만명을 넘겼다는 점만 봐도 충분히 드러난다. 

이점을 놓고 보았을 때 지금의 농촌은 바깥 청년들이 갈 이유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공간이다. 노동환경, 소득, 사회적 인식 등 그 어떤 요소에서도 직업적 만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새 직업을 갖는 데 있어서 농업 특성상 이주가 필수적으로 동반됨에도 불구하고 문화생활이니 의료시설, 교육 환경의 열악함 같은 건 빼놓고 생각해도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를 비롯해 여러 기자들이 열심히 쓴 대로, 물가 잡기에만 치중한 정부가 농가소득 하락을 외면하고, 생산비보다도 낮은 가격에 자본이 농산물을 사 가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일하다 심히 아파도 딱히 구제받을 길이 없는 곳이 농촌이라면 가지 않는 것이 백번 맞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깥사람들은, 특히 인터넷에 능숙한 청년들은 더 잘 알 수 있다. 

직장인에 비유했을 때, 농민 입장에서 ‘사장’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나랏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이 우리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공익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를 바탕으로 직접지불금을 비롯한 각종 핵심 농업 정책이 수립되고 농민들의 직장인 농촌과 농지의 관리의무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부여된다. 

한 해 농사를 짓는 데 성공하는 것 이상으로 농민이 손 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농민의 소득과 삶의 질은 많은 측면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농업 정책에 의해 좌우된다. 지금까지 우리 농정은 힘들여 생산한 농산물의 가치 보전에도, 어렵사리 마련한 경작 기반에 대한 보호에도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런 악조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종 선거의 농업 공약에는 ‘청년농 유입’을 이끌겠다는 허울 좋은 문구가 버젓하다. 

새 정부의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취임 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들녘이 아니라 밀가루, 식용유 가공공장이었다 한다. 곧 들녘이나 축사도 들르기야 하겠지만, 이번에도 느낌이 썩 좋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국가가 일한 만큼의 가치, 안정적인 영농환경을 구축하는데 무관심한 이상 더는 농촌이라는 직장에 매달려 있을 사람도, 새로 입사하려는 사람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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