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46] 가뭄

  • 입력 2022.05.29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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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올해 사과나무 꽃은 그런대로 잘 피었고 수정도 잘 된 것 같은데, 5월 말이 되도록 아무래도 자람이 느리고 수세가 약한 것 같아 열 그루쯤 사진을 찍어 멘토인 한 회장께 보내드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수세가 너무 약하니 질소 성분이 많은 속효성 유기질 비료를 긴급하게 투입해줘야 할 것 같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2월에 퇴비와 유박 등을 살포해 줬다고 했더니 날씨가 너무 가물어 수분 부족으로 나무가 흡수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질소 성분이 많이 함유된 생선 액비를 엽면시비가 아니라 꼭 토양에 직접 관주해 주라고 권고했다. 영양분을 더 공급하되 땅이 너무 메말랐으니 물을 충분히 공급해야 뿌리가 양분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사실 최근 한 달이 넘도록 이곳 영동지방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삼척과 강릉의 지난 큰 산불도 영동지방이 지속적으로 건조했기 때문이었다. 이곳 양양·속초 지역도 마찬가지다. 산불경계령이 지속되고 있고 마을에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확성기를 틀고 있다.

그런데 농작물이 타들어 간다는 경계령은 들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웬만하면 관수시설이 돼 있어 지하수가 마르면 모를까 큰 타격은 없다. 논농사는 관개시설이 거의 다 돼 있고 비닐하우스나 과수원 등도 관수시설이 기본이다.

문제는 아직도 중소농이 대부분인 밭농사는 관수 또는 관주시설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윗골의 경우 500평 내외의 작은 밭들이 대부분인데 관수시설이 돼 있는 밭은 우리집 농장 말고는 없다.

7년 전 처음 과수원을 조성할 때 설치했다. 3톤짜리 물통과 모터, 그리고 크고 작은 점적호스 등이었다. 그러나 3년 전 농장을 리모델링 하면서부터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일부 고장이 난 점도 있지만 몇 그루 안 되는 작은 과수원이라 필요하면 직접 호수로 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정의 경우 거금을 들여 지하 100m에서 지하수를 퍼 올리는 대공을 파놓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웬만한 가뭄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윗골 대부분의 밭에는 관정도, 관수시설도 없다. 그럼에도 농사를 계속 지으시는 것은 순전히 검정비닐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비닐을 덮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가뭄이면 작물은 벌써 타 죽었을 것이 뻔하다. 아직까지는 큰 피해가 없으나 가뭄이 더 오래 지속되면 병충해도 기승을 부리게 되고 작물은 결국 고사할지 모른다.

이곳 윗골에서 관수시설 없이 밭 농사지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높은 고령층이다. 검정비닐 하나로 가뭄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다. 저분들이 아니면 이 땅에서 농사지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윗골 전체가 머지않아 농사짓지 않고 방치되는 산지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은 간데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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