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아마조네스’는 어디에나 있다

  • 입력 2022.05.29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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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지난달 말에 좀 값진 활동을 했습니다. 지역의 시민단체와 협약하여 먹거리 취약 청소년들에게 꾸러미를 싸는 작업이었습니다. 대충 보자면 불우이웃돕기의 이름으로 흔하게 진행하는 사업이다만,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우리가 농사짓고 잡은 농수산물로 김치를 담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고, 반찬을 만든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불우이웃돕기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도운 것입니다. 그러니 연대사업이라는 것이 적절하겠지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멋진 일인 것입니다. 일의 규모나 과정으로 보자면 엄청난 이익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를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로컬푸드(지역먹거리)운동이나 푸드플랜(지역먹거리정책)의 정수가 아니겠습니까. 사실 지역에서 누가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가 빠진 채로 지역 농산물 판매 우선의 로컬푸드나 푸드플랜은 기형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얘기가 핵심은 아니라 다만 그런 내용을 담아서 진행된 그날의 단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농번의 절정기 직전이라 다들 마음이 무거운 철이었습니다. 고사리 농가나 마늘 농가로서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의 바쁨에도 우리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다들 모여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준비한 물품을 챙기며 각자 역할을 나누는데, 큰일을 하다 보면 어디나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 챙기느라 미처 전체를 돌볼 겨를도 없이 빠진 물품 등을 챙겨가니, 세상에나 족히 10년은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한 사람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게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손이 빠르고 음식을 잘하는 이는 선두에서, 뒷일을 잘하는 사람은 또 뒤에서 각자 역할을 도맡아서는, 남들이 하루가 걸려도 다 못할 일을 단 3시간 동안 해내는데, 그 조화로움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정황상 새벽부터 알타리무를 손봐온 언니들의 예지력이 한몫했다고나 할까요?

사람이 원래 이렇게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의 향기에 취해 매혹적으로 동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에게 맞추는 모습이 어찌나 매끄럽던지 그 모습에 사뭇 마음이 설렜습니다. 마지막에 다 장만한 음식을 여러 용기에 나눠 담으며, 한창 클 때인데 많이 먹게끔 넉넉하게 담아 주자는 바람도 보기에 좋았습니다. 이때쯤 어김없이 나오는 말, ‘우리끼리면 소도 잡겠다’는 말입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대저 소를 아무나 잡던가요? 힘센 소를 잡는 일은 여성들로서는 애당초 접근하기 어려운 일로서 그만큼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 서로가 위로하는 말이지요.

아마조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이라지요? 왕과 각료, 전사 등의 역할을 여성들만 맡아 튼튼한 왕국을 이루었다 합니다. 북유럽의 발키리 전설도 있습니다. 전쟁의 요정이자 여전사인 발키리가 중무장을 하고서 전장을 날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시대나 지역도 다르지만, 여성의 역할이 단아하고 우아한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고, 전장을 날아다니는 역할도 기꺼이 했다는 것입니다. 암만요, 농경이 시작되기 전,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 양식을 구해올 가능성이 누가 더 높았겠습니까? 힘세고 무력이 뛰어난 사자도 사냥성공률이 30% 이하라는데, 인간이 수렵에 절대적인 의존을 하기는 어려웠을 터, 당연지사 채집생활을 하며 모계사회를 이끌어왔던 여성들의 위대한 능력이 그대로 발휘되었겠지요. 그러니 여전사의 전설이 여러 곳에 남아있는 것일 터입니다. 1만년 전, 농경과 함께 시작된 가부장 사회에서도 여성들은 여전히 가정과 사회에서 생산과 돌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지요. 아마조네스의 여전사처럼요. 모날 모시에 진행된 일이, 별다른 규율과 훈련이 없이도 각자의 자리에서 닳고 닳도록 익혀온 그 역량과 고도의 사회성을 멋지게 발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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