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청계천⑤ 청계천에서 비단잉어를 잡았다

  • 입력 2022.05.2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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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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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아연 활기가 넘쳐나는 시기가 있었다. 여름철, 장마로 큰물이 지는 때다.

평소엔 전체 개울 폭의 3분의1 정도만 차지하며 흐르던 개천물이 큰물이 지면 불고 불어서, 가장자리에 쌓아놓은 석축의 턱밑까지 차오른다. 사람들은 천변도로에 나와서 흙탕물이 무서운 기세로 내달리는 모습을 구경한다.

-어, 저것 좀 봐. 뉘 집에서 개집이 떠내려 오고 있어. 아이고, 강아지가 그 위에 올라 앉아 있는데?

-저건 또 뭐야! 누구네 집 지붕이 통째로 떠내려가네!

초가집 지붕이 흙탕물에 휩쓸려 내달리기도 하고, 닭장이나 개집이 떠내려가기도 했다. 어른들은 물난리를 당했을 사람들의 처지가 남 일 같지 않아서 끌끌 혀를 찼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신나는 구경거리가 없었다. 그런 때면 영악하고 짓궂은 남자들이 으레 한두 명쯤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떤 남자들은 집에서 가져온 빨랫줄에다 쇠갈고리를 매달아서 휙, 던져서는 기둥 삼을 만한 목재도 끌어당겨 건지고 소쿠리나 문짝 같은 세간도 건져 올리고 그랬어요.”

큰물이 개천을 한바탕 휩쓸고 간 뒤에 비가 그치면, 이번엔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청계천이 북적거렸다. 밤이면 너도나도 횃불을 피워 들고 개천으로 내려온다. 어른 아이가 따로 없었다. 물이 맑아지자 한강에서 제법 많은 고기들이 올라온 것이다. 사람들이 챙겨가지고 나온 고기잡이 도구들도 볼만했다.

“죽창 비슷한 것도 들고 나오고, 삼태기를 갖고 나오기도 하고…형하고 나는 밑 빠진 양철통을 갖고 나갔어요. 횃불로 비추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물고기가 보이면 양철통을 물속에 콱, 내리 박아요. 그러면 제법 큰 붕어가 통속에 갇히는 거지요.”

그러나 아무리 홍수가 더러운 물을 쓸고 간 뒤끝이라 해도,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에서 잡은 물고기인 바에, 그걸 밥상에 올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성선 원장은 청계천에서 잡은 물고기를 딱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노라 회고한다.

“어느 핸가는 장마가 지고난 뒤에 형하고 청계천에 나갔다가, 대나무 삼태기로 괭이자루만한 뱀장어를 잡았어요. 자랑삼아 집에 가져갔는데 아버지가 그걸 소금 뿌려서 구워먹자고 하시는 거예요. 뱀장어는 보약인데 그 아까운 걸 어떻게 버리느냐고.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구워 놓으니까 맛은 좋더라고요. 삼부자가 그 날 저녁에 몸보신을 했지요, 허허.”

장마 뒤끝에 고기잡이 놀이를 하다 보면 뜻밖의 물고기를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 이성선은 수초가 우거진 물가에서 대나무 삼태기로 매우 희귀한 어종을 건져 올렸다는데….

-와, 엄청 큰데, 몸이 울긋불긋해. 형, 이거 무슨 고기지? 무지무지 크고 예쁜 놈이 잡혔어!

-어디 보자. 야, 이건 비단잉어야, 비단잉어!

-비단…잉어라고? 이거 집에 갖고 가서 기르면 안 될까?

-글쎄, 너무 커서 좀 징그럽긴 한데, 일단 엄마한테 보여주고 어항을 하나 사달라고 하자.

어른 팔뚝만큼이나 크고, 생김새가 화려하기 그지없는 비단잉어들이 종종 잡히는 수가 있었다. 그 비단잉어의 유입경로를 얘기하자면 옛 왕조시대에, 인근의 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생활하수를 흘러 내보내던 하수도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이성선 원장으로부터 들어보자.

“청계천에서 지금의 서울대병원 앞쪽을 거쳐서 창경궁으로 통하는 지하에 널찍한 맨홀이 있었어요. 맨홀이 얼마나 넓었냐면, 어른들도 허리를 굽히지 않고 서서 왕래할 만큼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비단잉어의 본래 서식지가 창경궁의 연못이었다, 이런 얘기죠.”

지금도 창경궁에 춘당지(春塘池)라는 못이 있는데, 그 춘당지에서 기르던 비단잉어들이, 홍수가 나서 연못이 넘치자 밖으로 나왔다가, 맨홀로 쓸려 들어가 청계천까지 흘러나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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