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가난한 농민에게

  • 입력 2022.05.22 18:00
  • 기자명 채호진(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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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진(제주 서귀포)
채호진(제주 서귀포)

필자는 제주에서 1,200평의 밀감농사와 함께 여기저기 다른 밭을 임차해서 복합영농을 한다. 주위에서 농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대뜸 하는 말이 “어이구 부자시네요”라고 한다. 내가 과연 부자일까? 투기꾼들에 의해 제주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 갖고 있는 자산을 처리하면 부자일 수도 있겠다. 빚만 없으면.

3년 전에 읽은 책 제목이 생각난다. <가난한 농부에게 바란다>. 농민에 관한 책을 찾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해봤다. 왜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가난이란 단어는 현재 농민에게 항상 붙어 다니고 있기 때문일 거다. 책에서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과연 지금 농민 하면 생각나는 게 무엇인가. 힘들고, 얼굴은 거멓고, 새벽에 나가 해질 때까지 일하고. 밝은 내용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필자 혼자의 생각인가.

그 옛날 지주 밑에서 뼈 빠지게 소작하던 농민이 자기의 땅을 갖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기뻐했을까. 과거 한때 좋은 시절에는 한 해 농사지어서 그 결과물로 다시 농사지을 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 해 농사지어 땅을 살 수 있는 수익을 올리는 게 아니라 밭 임차료 내기도 벅찬 상황이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우리 농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농촌은 이미 일반 도시민들에게 그저 힐링하는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그것도 다행이다. 자연 파괴만 안하면.

한 토론회에서 어떤 이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내가 어떤 마을을 지나가는데 젊은 청년들이 농사를 짓고 있더라. 얼마나 암울한 세상인가” 세상에 할 일도 많은데 왜 농사를 짓고 있냐는 것이다. 농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느껴지는 얘기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지금 우리 농민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면 면세유가 나오고 농기계 구입 시 보조도 해주고 농사지으라고 진흥기금도 나온다. 그리고 농사지을 자금을 미리 주는 선도금에 이제는 농민수당도 준다. 이 얼마나 농민이 살기 좋은 세상인가. 농민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런 정책을 알아서 펼쳐주니.

농민수당은 공익적 가치를 갖고 있는 농민을 위해 찔끔 연 40만원, 그것도 전업농만 준다. 농민들 사이에도 이견은 있지만 과연 우리나라는 농사만 지으며 먹고살 수 있는 나라인가.

몇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공공근로라도 나가면 이 40만원도 그림의 떡이다. 농어촌진흥기금과 선도금 같이 돈으로 보조하는 것도 기한이 되면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 농사가 원하는 대로 완연히 될 거라 생각해서 자금을 받았지만 지금 이 코로나19 상황과 기후위기에서 과연 온전한 수확량이 나오고 과연 적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는 판로가 나올까.

주위에서는 해마다 선도금 갚을 때만 되면 한숨소리만 나온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쌓이고 쌓여 진흥기금 같은 목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면 그땐 농민이 아닌 빚쟁이로 전락할 것이다.

이뿐인가. 필수 농자재값이 오르고 기름값에 비료값, 농약값도 올랐다 하고 인건비도 엄청 올랐다. 은행 대출이자도 오르고. 모든 것이 오르는데 내가 생산한 농산물값은 매해 같은 자리를 맴돈다. 참 이해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농민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의 농민들은 인정을 안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땅이 있으니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진짜 내가 부자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어떤 이가 내게 술자리에서 씁쓸하게 건넨 한 마디가 마지막으로 생각난다.

“내가 나중에 농사를 접을 때 남는 것은 고철이 된 농기계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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