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청계천④ 다리 밑엔 걸인이, 공중엔 솔개가…

  • 입력 2022.05.1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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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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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만 해도 서울의 빈민촌엔 비새는 판잣집이 허다했다. 하물며 우리의 주인공인 이성선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30년대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절에 청계천변에서 구걸을 해서 끼니를 이어가던 걸인들의 집은, 오히려 지붕이 매우 튼튼했으므로, 천장에서 비샐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청계천의 다리가 스무 개가 넘었는데 그 다리들마다 양쪽 가장자리에는 어김없이 거지들이 움막을 만들어놓고 살았어요. 다리 상판(床板)을 지붕 삼고 교각을 기둥 삼아서 거적뙈기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다 솥단지를 걸어놓고 동냥해온 양식을 끓여 먹고 사는 거지요. 그들은 청계천의 더러운 물속에 들어가서 거침없이 목욕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랬거든요.”

천변의 일반 주민들의 경우, 물론 철없는 아이들이 더러 물가에서 첨벙거리기는 했으나, 개천의 물속에다 손발 담그기를 꺼림칙해 했다. 또한 한강에서 아녀자들이 빨래하는 모습이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청계천의 경우는 아니었다. 겨울철, 특별한 구역을 제외하고는.

“추운 겨울날이면 간혹 동네 아낙들이 나와서 빨래를 하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었어요. 여자들끼리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기까지 한 걸요.”

-아이고 손 시려. 물이 왜 이렇게 차지? 용길이 엄마, 저 쪽으로 조금만 더 비켜줘.

-어휴, 나도 저 쪽 얼음장 같은 물로 빨래하다가 지금 막 이리로 왔는데?

-그러지 말고 옆으로 조금만 더 가라구. 웬 자리는 그렇게 넓게 차지하고 그래!

-지금 하고 있는 담요 빨래만 끝내고 비켜줄게.

웬 자리다툼일까? 청계천 바닥 어디에서 온천수가 솟아났을 리는 없었을 텐데.

“뭐, 온천수라고 해두지요, 허허허.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 있었거든요. 그게 사실은…인근 목욕탕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었어요. 사람들이 몸을 씻고 난 땟물이 하수관로를 타고 청계천으로 흘러나왔는데, 그 물줄기가 흐르는 곳은 한겨울에도 제법 뜨뜻했거든요.”

물론 빨랫감을 가지고 그 곳으로 나온 사람들은, 땔감 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탓으로, 물을 끓여서 빨래를 할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집 주부들이었다.

이성선이 초등학생이었던 1930년대의 청계천 주변 마을에는 대부분 단층건물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중 절반가량은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교동, 그러니까 지금의 방산시장 근처에서 청계천 쪽을 건너다보노라면 맞은 편 동네에 2층 건물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광장시장 관리사무소 건물이었다. 그 건물 꼭대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상주했던 진귀한 날짐승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솔개 두 마리가 거기에 둥지를 틀고 살았는데, 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청계천 상공에 높다랗게 솟구쳐서 뱅뱅 돌면서 내려다보는 거예요. 그러다가 먹잇감을 포착했다 하면 수직으로 내리꽂히듯 하강해서는 날름 채가곤 했는데 와, 그 동작이 정말 비호같았어요.”

천변 주민들에게 그 솔개란 놈은 환영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이각선·이성선 형제는 천변 둔치의 모래밭에서 병아리를 키웠다. 그 또래 아이들 여럿도 용돈 벌이 삼아서 병아리를 사육했다. 바지게처럼 생긴 둥우리를 모래바닥에 엎어놓고 그 안에 병아리를 가두어 키웠다는데, 심심찮게 둥우리를 빠져나온 놈들이 있었다. 그때를 놓칠 솔개가 아니었다. 병아리든 중닭이든 순식간에 낚아채서는 아지트로 공수해갔다.

“아침에 먹이를 주고 등교했다가, 하교 후에 천변으로 달려가서는 병아리 마릿수부터 헤아려 보지요. 어떤 날은 두 마리가 비고, 어떤 날은 세 마리가 비어요. 그럴 땐 맥 빠지지요.”

하지만 그때는 그 솔개란 놈이 그토록 원망스럽더니, 65년여가 지나서 다시 그 부근을 지날 때면, 병아리를 비호같이 낚아채가던 녀석들의 힘찬 비상이 그리워지더라고 이성선 원장은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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