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곡물 파동의 시대, ‘가농소’로 되짚는 경축순환의 본질

생명·순환농업 실천하는 가톨릭농민회의 ‘연결고리형 사육’
농업 부산물로 직접 만든 사료, 시중 배합사료 3분의 1 가격
“소비자·생산자의 조직화·인식의 변화에 정부 역할 커져야”

  • 입력 2022.05.15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백승진 평창가농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가 자신이 키우는 소들에게 먹일 자체발효 농후사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곳에서 기르는 소들의 먹이는 조사료를 포함해 대부분을 유기농업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로 조달한다.

 

유례없는 곡물 파동으로 인해 지금 축산업의 지속가능성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실효성 있는 경축순환을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천주교 교리를 따라 이미 오래전부터 높은 수준의 경축순환을 실천하며 그 작은 불씨를 지키는 농민들이 있다. 어디까지나 축산을 ‘순환의 연결고리’ 중 하나로 여기는 만큼 전업형 축산에 적용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높은 수준의 탄소중립형 축산이 요구되고 있는 오늘날 정책 입안에 있어 눈여겨봐야 할 사례임엔 틀림이 없다.

 

강원도 평창군의 평창가농영농조합법인(대표이사 백승진)은 지난 1978년 탄생한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연합회 연풍분회가 모태다. 교리대로 생명·순환농업을 실천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영농을 목표로 지난 2011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새로이 출범했고, 올해는 고용노동부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 2004년 한국천주교의 소비자 공동체 ‘우리농운동본부’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와 합심해 ‘가농소 입식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안동을 넘어 이곳 평창에서도 가농소들이 자라고 있다. 영농조합에 소속된 24가구 중 5가구가 85마리가량의 소를 기르고, 여기에 2가구가 더 합류할 예정이다.

가농소는 도시 신자들이 농촌과 관계를 맺고, 입식비용을 지원하며 소고기 구매를 미리 약정하는 형태로 주로 유통된다.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계약재배’와 ‘직거래’ 역시 중요한 요소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기후위기 도래 한참 전부터 이미 기틀이 잡혀 있었던 이 소들의 특별한 사육방식이다. 이 소들의 먹이는 오롯이 우리 농촌에서 나오고, 그들의 배설물 역시 전량이 영농조합의 경지 곳곳에 흩뿌려져 새 농사의 밑거름이 된다.

배합사료 대신 농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체 제작 농후사료에는 말 그대로 우리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곡물류 부산물이 들어간다. 식용으로 팔기엔 품질이 떨어지는 콩부터 기름을 짜내고 남은 깻묵, 등겨(미강), 싸라기 등이다. 메밀 요리가 유명한 강원도에선, 심지어 면 공장에서 끝단을 정리하기 위해 절단하고 남은 면 부스러기까지도 훌륭한 원료가 된다.

수분량을 맞추기 위해 두부 공장에서 버리는 비지도 사용하는데, 비지를 포함해 원료 상당수는 폐기 처분되기 쉬운 물건들인 만큼 경축순환의 측면에서도, 환경친화적 측면에서도 매우 가치 높은 영농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소를 키운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제조방법의 틀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들어가는 원료의 종류와 비중은 상황과 계절에 따라 늘 유동적이다. 유연하지만 대신, 발효기를 써서 자가 제조해야 하고 원료 수급 균형에 늘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더 많은 노동력이 요구된다.

그 대가로 얻는 건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농가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이 수제 사료의 제조비용은 1kg당 170원 정도다. 최근 사료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각종 배합사료의 가격을 생각하면 매우 놀라운 수준이다. 사료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지난 2021년 이전을 기준으로 잡더라도, 농후사료를 먹이는 데 드는 비용은 배합사료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다섯 농가가 사용할 두부 비지를 1년 내내 가져오는 대가는 고작 100만원에 불과하다.

곡물 파동을 겪고 있는 지금은 그 격차가 3배 이상 벌어졌다. 매월 축종별 공장도 사료 가격을 발표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식 자료상으로 지난 3월 비육용 배합사료 가격이 1kg당 505원이었다. 5월 중순 현시점에선 25kg들이 사료 한 포대를 구매하기 위해 1만5,000원, kg당 600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배합사료 가격이 이렇게 천정부지로 치솟는 와중에도 이곳 농민들이 소먹이에 들일 비용은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강 등 기존엔 사료용으로 잘 쓰이지 않던 일부 원료의 가격이 덩달아 올라 생긴 미미한 영향이다. 그조차 부담이 된다면 농가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다른 원료를 찾을 수 있다.

배합사료의 그것과 맞먹는 수준의 가격 파동을 겪고 있는 조사료 역시 크게 걱정이 없다. 이곳 농민들은 강원도농업기술원 옥수수연구소가 개발·개량하는 국산품종 ‘오륜’을 적극 재배해 무농약 팝콘용 옥수수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9월에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면 경지에 남은 옥수수대를 정리해 바로 10월부터 조사료로 활용한다.

백승진 평창가농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를 비롯해 영농조합 내 소를 키우는 농가들은 보통 호밀 이모작도 병행 하는데, 5월 말까지 수확을 마치면 이 또한 9월까지는 소를 먹일 수 있다. 옥수수대와 호밀을 먹이는 시기를 제외하고 나면 약 3~4개월 정도만이 자급 불가능한 기간으로, 수입 조사료를 먹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이 기간에는 지역축협에서 볏짚을 구매해 대체하곤 한다. 현재 사료에서 유일하게 관행 영농의 부산물을 사용하는 부분이자, 시세의 영향을 받는 지점이랄 수 있다.

“조사료 먹이는 데 있어선 마지막 남은 과제가 볏짚이다. 유기농 벼 재배단지가 인근에 있다면 직접 계약을 통한 조달이 상대적으로 쉬웠을 텐데, 여기는 강원도인 데다 고랭지라 논 자체가 많지 않아서 경기도나 충청도까지 알아봐야 하는 실정이다.”

가톨릭 교리를 따르기 위해 거세우를 기르지 않고 암소만을 도축하는 데다 사료의 특성까지 더해져, 가농소들로부터 얻는 고기는 축산물등급제 상 1~2등급에 그친다. 하지만 도시의 우리농공동체는 이 고기들을 지육가격 기준으로 1+등급 이상의 가격을 주고 구매한다. 이러한 축산이 우리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있고, 또 건강한 사육에 대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덕이다.

백 대표이사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이상에 가까운 경축순환 농업을 유지하고, 지속가능성까지 발굴한 유일한 사례가 바로 가농소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국가적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이러한 축산이 확산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의 역할이 더욱 커져야 한다는 점 또한 강조했다.

“기존의 축산 방식으론 자리 잡은 농가들, 소비처가 확실한 일부만이 버텨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농가들은 언제든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게 최근 드러나지 않았나. 정부가 조직화된 소비자와 생산자를 통해 기반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가령 수입산으로 소를 먹이는 건 탄소중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유기축산 인증을 받는 데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배합사료만을 전제로 한 축산물 등급제도 바뀌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조직적 소비나 생산의 변화에 있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 환경에 부담을 덜 주면서도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축산물에 대한 소비 의식변화 그리고 이 의미 있는 과정들을 뒷받침할 유통에 대한 고민과 지원이 필요하다.”

 

영농조합의 사육농민들과 천주교 서울교구 응암동성당이 암송아지 입식 지원 및 유기 소 사육을 서로 확인한 내용. 소비자들은 송아지 입식 비용을 먼저 지원하는 형태로 고기를 구매하며, 농민들은 안전한 고기에 대한 사육을 약속한다.
영농조합의 사육농민들과 천주교 서울교구 응암동성당이 암송아지 입식 지원 및 유기 소 사육을 서로 확인한 내용. 소비자들은 송아지 입식 비용을 먼저 지원하는 형태로 고기를 구매하며, 농민들은 안전한 고기에 대한 사육을 약속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