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45] 완장

  • 입력 2022.05.15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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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오미크론 확진으로 7일간 농장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했다. 그러나 지난주 격리가 해제돼 오랜만에 농장에 올라가 보니 그새 못 봤다고 사과 꽃도 많이 피었고, 감자 싹도 올라왔고, 토종 쌈채와 조선파도, 옥수수·당근·대파 등도 싹을 내밀었다. 사과밭 토끼풀도 엄청 자랐다. 매일 오다가 일주일 만에 와보니 농장은 확실히 많이 변해 있었다.

생명이 살아 움트고 있는 자연은 언제나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은퇴 후 작은 농사지으며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것 같다. 잘한 결정이었고 만족스럽다.

그런데 이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을 보면 우울해진다. 총리나 장관 자리에 앉힐 자들인데 어디서 이런 사람들만 골라서 내놓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자들만 고른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이런 자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보통의 평범한 국민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리사욕으로 가득 차 있다. 딴 세계에서 온 사람들 같이 느껴진다.

사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양심과 수치란 찾아보기 어렵다. 온갖 편법이 판을 친다. 좋은 머리를 잘도 굴린다. 돈 많고, 힘 있고,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자들이 더하다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이끌고 갈 대통령은 무슨 왕조시대의 왕이라도 된 줄 착각하는 것 같아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5년은 금방 지나간다. 그럼에도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제일 먼저 꺼낸 화두는 청와대에서는 단 한 시간도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산에 있던 국방부를 내보내고 대통령 집무실로 쓰고 있다. 외교부 장관 공관을 거처로 하겠다고 공사 중이다.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의 집과 집무실은 대통령 개인의 것이 아니다.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거친 후에 옮기더라도 옮기는 것이 옳다. 5년밖에 안 살 사람이 무슨 왕이라도 된 듯 자기 맘대로 옮길 일이 아니다.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해야 함이 도리나, 그보다는 젊은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이 자꾸 생각난다.

땅 투기로 돈을 많이 벌어 사업가가 된 최 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건달 용술에게 맡기며 완장을 채워준다. 양어장 관리인에 불과한 용술은 완장의 위력에 안하무인격으로 위세를 부리게 되고, 결국 자기를 고용해 준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거부하다 해고된다는 내용이다.

용술은 완장을 권력으로 착각했을 뿐만 아니라 완장을 채워 준 사장조차도 완장으로 누르려 는 우를 범했다. 치기 어린 권력형 인간들의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명작이다.

나는 왜 지금 이 좋은 계절에 ‘용술의 완장’이 자꾸 머리를 맴도는지 모르겠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농장은 너무나 평화로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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