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전원주택과 별장의 경계 ‘농막’, 정체성 재정립해야

  • 입력 2022.05.15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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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입하(立夏)가 지났다. 농산촌에서는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비로소 농막(農幕)의 시간이 돌아왔다. 농막은 어린 시절 원두막에 대한 추억을 가진 많은 도시민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존재다. 한여름 농사철에 햇빛과 바람을 피하며, 정중동의 자연 풍류를 즐기던 곳이 원두막이었다. 농막은 바로 그 원두막의 현대판이다.

도시 고도화와 최근 코로나19 장기화의 여파로 도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그래서 많은 도시민들이 농산촌 어메니티가 훌륭한 곳을 찾아 오토캠핑을 하거나, 펜션에서 주말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가 있는 젊은 층을 포함해 조기 퇴직자들이 주말을 농산어촌에서 보내려는 여가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주중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농산촌에서 보내는 소위 ‘오도이촌(5都2村)’ 문화다.

이 중에는 전통적인 농산촌주택인 별장을 소유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 1가구 2주택의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농막에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퇴직 후 농산촌 생활을 꿈꾸는 중년층도 농막을 매개로 귀농·귀촌을 준비하기도 한다.

농산촌에는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있다. 농가주택, 전원주택, 별장 등이다. 그리고 주택은 아니지만 농막이 있고, 모듈러가 있고, 빈집이 있다. 농막은 현 단계 농촌문제를 집약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나아가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고속도로의 휴게소이자 도농문제의 상징처럼 부상하고 있다.

농막의 용도는 농지법 시행령에, 설치기준은 건축법에 규정돼 있다. 농막은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주력 농산물 간이 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적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즉, 원두막이나 텐트, 이동형 시설과 같은 임시 가설물이지 거주용 주택이 아니다. 그런 농막을 ‘거주용’으로 인식하는 순간 여러 가지 불법·편법 등 부작용, 민원이 발생한다.

지금 대다수의 농막은 자동차가 바로 들어가는 문전옥답이거나 우량농지에 설치되고 있다. 평야지대를 제외한 일반적인 농지는 소농 소유로 잘게 나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농지와 농막이 용도 면에서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농막은 급속한 농촌소멸을 감속시키는 완충 역할을 하면서도 농지의 존재가치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해 농지법을 형해화(形骸化)하고, 농지전용을 가속시키는 이중성의 아이콘으로 격하된 것이다.

새 정부의 농정의제는 ‘살고 싶은 농산어촌’이다. 식량주권을 확보하고, 이를 위해 우량농지를 보전한다고 국정과제에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어는 ‘농지’고, ‘곡물자급률’은 그 대표지표다.

1965년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93.9%였다. 그러다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이후 40%대로 급락하더니, 2020년 말에는 19.3%로 마지노선마저 붕괴됐다. 한편, 2020년 농지면적 조사결과, 2012년의 173만ha에서 156만ha 정도로 감소했다. 2011년에 내놓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예측이 현실화됐고, 그 추이가 계속된다면 2030년 농지면적은 148만ha가 될 전망이다. 2012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2020년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32%로 설정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175만㏊의 농지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농지는 생계를 위한 생산수단이자 사유재산(집안 유산)이고, 주권국가의 식량자급 원천이라는 다중성이 있어서 논란이 끊임이 없다. 농축산물 수입 자유화율은 거의 100%에 달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국제분쟁,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자유무역협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 마당에 과연 곡물자급률 19.3%가 주권국가로서의 지표가 맞는지에 대한 전향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오는 18일부터는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 농지투기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농지법 제54조가 시행된다. 농지소유와 이용에 대한 의무조사가 강화돼 진짜 농민 여부를 검증하게 되는 것이다. 농막도 당연히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농막도 재정비하고 양성화해야 한다. 따라서 지방선거 이후 농막 관련 농지법과 건축법, 그리고 지자체마다 제각각인 조례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농막은 농가주택, 전원주택과 주말용 농촌 미니별장 또는 오토캠핑장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금 농산촌 지자체들은 지방(농촌)소멸 위기에 매우 민감하다. 농지와 농막에 불법·편법이 상당하지만, 일손이 부족한 지자체 공무원이 자기 지역에 와서 농막 짓고 생활하겠다는 외지인 농지 주인들을 설득하거나 행정처분을 내리라고 주문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농지는 다른 부동산과는 달리 사유재산이면서도 공익적 가치가 매우 크다. 농지는 곧 국민들의 밥상이다. 농지 취득·소유자들은 농지법과 지방 조례의 제정 취지를 존중해서 자발적으로 농지·농막을 문제없도록 정리해야 할 것이다. 편법으로 농지를 감소시키는 농막 대신 인근 마을의 빈집을 임시 거주용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곧 새로 시작하게 될 농지실태조사는 새 정부의 농정과 국정 성패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전 정부에서의 ‘경험’에서도 잘 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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