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농기계의 ‘첨단·디지털화’ … 오류·오작동 등 잦아져

급발진·급제동 발생 의혹에 ‘수리 인력 확충’ 시급 현안으로 대두

대물·대한 배상에 국한된 ‘농기계종합보험’ 무용론 재차 불거져

  • 입력 2022.05.15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첨단·디지털화된 농기계의 오작동 발생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농민들은 농기계 결함이나 분쟁 발생 시 이를 해결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트랙터로 경운 작업 중인 밭의 모습.
첨단·디지털화된 농기계의 오작동 발생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농민들은 농기계 결함이나 분쟁 발생 시 이를 해결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트랙터로 경운 작업 중인 밭의 모습.

 

최근 ‘첨단·디지털화’로 점철된 트랙터 등의 대형 농기계에서 급발진·급제동과 같은 심각한 오작동 발생 의혹이 불거졌다. 아울러 구동·제어방식 등이 기존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고 있는 탓에 고령화된 농촌서 수리 인력을 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실정임이 문제로 대두됐으며 오류 및 오작동, 고장 시 농민 피해를 배상할 농기계종합보험의 역할이 미비하다는 여론 역시 재차 힘을 얻고 있다.

얼마 전 최신 수입 트랙터를 구매한 A농민은 농작업을 하던 중 속도가 제어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A농민에 따르면 설정값 이상으로 트랙터의 속도가 치솟았고, 경고등이 켜지며 어떠한 방법으로도 기계가 제어되지 않았다.

A농민은 “트랙터를 구매한 뒤 급발진 현상이 3번 정도 발생했다. 수리 기사가 출장을 와도 별다르게 뭘 해주진 못했고 기계를 재부팅하는 수준의 조치뿐이었다”라며 “농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오작동에 많이 놀라기도 했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역 사회가 워낙 좁다 보니 농기계 오작동 등에 대해 드러내기 싫어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아는 사람 중 한 명 역시 경사로에 세워둔 트랙터를 다시 운행할 때 자체적으로 다시 급제동되는 오작동 증상을 겪은 바 있다”고 전했다.

또한 A농민은 “농기계 오류나 오작동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계를 수리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농도’라고 하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내에 수리 인력이 통틀어 5명밖에 없다고 얘기하던데, 수리 기사들이 출장 와서 죽겠다는 하소연을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농촌 고령화가 심각하다 보니 지역 내 농기계 대리점이나 수리업체 등의 인력도 고령화돼 빠르게 첨단화, 디지털화되는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나 전자 제어 등에 익숙지 않아서인지 재부팅하는 방법 외에 오작동 원인 규명이나 제대로 된 수리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현재로선 영농 현장에서 농기계 오작동이나 결함이 발생해도 이를 해결할만한 제도나 절차 등이 확립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농기계 관련법인 농업기계화촉진법 역시 해당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소비자기본법과 한국소비자원의 분쟁 해결 절차 등을 통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방법밖에 없어서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기계 결함이나 오작동 등의 민원을 농민으로부터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농민들이 문제 제기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반증하는 셈이다.

정부의 최근 농기계 관련 연구·사업은 대형화·첨단화·디지털화 등에 치중돼 있다. 농식품부를 비롯해 농촌진흥청 등의 연구기관마저 부족한 농촌 인력을 대체할, 거의 유일한 방안으로 고도화된 농기계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실제 GPS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트랙터 등이 출시되고 있으며, ‘농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대부분의 농기계가 편의성 및 자율화, 디지털화 등에 집중하는 추세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오작동 발생 등을 문제로 토로하며,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의 효율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북의 한 농민은 “요새 트랙터는 GPS 좌표와 경로 등을 찍으면 기계가 알아서 작업을 한다. 물론 인력 부족을 겪는 농업 현장에서 참 편리한 기능인 건 확실하지만 간척지 논처럼 경작지 모양이 반듯하고 굴곡 없이 평평해야 활용할 수 있다는 큰 단점도 있다”며 “일반적인 밭·논은 경사진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땅 자체가 고르지 않아 오히려 자율주행 기능의 사고 유발 위험성이 높은 것 같다. 자동차보다 농기계의 크기가 크고 힘이 센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운전자가 더 크게 다칠 수 있는데, 업체나 연구기관에선 기계를 기능적으로 발전시킬 생각만 하고 실제 현장 여건이 어떤지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디지털화된 농기계의 오작동 발생 의혹과 더불어 농기계종합보험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다시 직면한 상태다. 대물·대인에 국한된 소극적인 배상 지급도 문제지만, 작업자의 신체피해 보상 역시 기준이나 금액 측면에서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현장서 끊이질 않고 있다. 최근 사용 중인 수입 농기계 수리 과정 중 부품 수급 문제로 농작업 일정에 차질을 겪은 한 농민은 “보험료만 1년에 300만원 이상인데, 보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입을 하고는 있는데 타박상 등 작은 부상의 경우 보험금을 전혀 받지 못한다”라며 “자동차보험은 사고가 나서 수리를 맡기면 대차비용도 지원해주고 하는데, 농기계보험은 정책보험임에도 불구하고 쓸모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온갖 새로운 기술이 더해지며 농기계의 크기와 가격 또한 그 덩치를 점점 불려가고 있다. 하지만 농기계 사고나 결함 발생 시 원인 규명이나 배상 등에 대한 제도·절차는 너무나도 미비한 실정이다. 현장 농민들은 내년 시행을 앞둔 ‘농약피해분쟁조정위원회’처럼 농기계 분쟁 역시 제도권 안에서 해결될 수 있도록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