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청계천③ “거름 쳐!”와 “(똥) 퍼!”

  • 입력 2022.05.01 18:00
  • 수정 2022.05.16 17:0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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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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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선 할아버지는, 천변 둔치의 모래밭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땀이 나면 청계천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글쎄, 그가 소년기를 보냈던 1930년대라면, 하수처리 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지도 않았을 터이고, 따라서 천변 가정집들의 온갖 오폐수가 청계천으로 흘러들었을 텐데…과연 멱을 감을 수 있을 만큼 깨끗했을까?

그 시절 청계천 인근 예지동의 주택가에서 남자들이 둥근 나무통을 양쪽에 매단 지게를 지고서, 골목을 누비며 이렇게들 외친다.

-거름 칩니다! 거름 쳐요! 거름들 치세요!

거름을 치라니, 무슨 소릴까? 이 남자가 만일 같은 목적을 가지고 1970년대의 서울 주택가 골목에 나타났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퍼어! 퍼요!

돈을 받고 각 가정의 분뇨를 수거하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다. 변소의 ‘똥’을 퍼내주겠다는 얘긴데 민망해서 목적어를 얼버무린 채 그렇게들 외쳤다. 하지만 “거름 쳐!”와 “(똥) 퍼!”는 같은 말이기도 하고, 또 다른 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에야 서울의 가정집에서 배출되는 분뇨는 그저 퍼서 내버려야 할 것이었지만, 이성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당시에는 농작물을 키우는 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서울 가정집들의 변소가 모두 재래식이었기 때문에 청계천이 그나마 덜 오염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우선 그땐 인구가 적었지요. 그 시절엔 가정집의 마당 한쪽에 땅을 파고서 거기에다 커다란 통을 묻은 다음에 그 위에다 변소를 지었단 말예요. 그 똥통이 다 차기 전에 치워야 할 것 아니겠어요? 각 가정에서 수거한 분뇨는 일단 커다란 나무통으로 모아져서 우마차를 통해 동대문까지 운반되었고, 거기서부터는 대형 탱크로리에 담겨서 전차로 왕십리 등지의 농사짓는 곳으로 수송되었던 거예요.”

그 시기 왕십리, 성수동, 광나루, 뚝섬 등지에는 널따란 채전(菜田)이 조성돼 있어서 서울 시민의 채소공급처 구실을 했는데, 그 채소를 키운 거름이 바로 시민들의 똥오줌이었던 것이다. 배설한 분뇨로 채소를 키우고 그 채소를 다시 사람이 섭취하고…기막힌 순환원리다. 어쨌든 일반 하수는 개천으로 흘러들었겠지만 똥오줌은 그렇게 별도로 처리가 됐기 때문에, 청계천을 흐르는 물이 청정하지는 않았어도 아주 더럽지는 않았다는 것이 이성선 원장의 증언이다.

이성선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그의 가족은 예지동을 떠나 주교동으로 이사를 했다. 옮겨간 동네가 예전에 살던 동네와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는 않았으나 청계천의 이 쪽 편에서 저 쪽 편으로 생활터전을 옮긴 것이다.

“지금의 방산시장 그 일대가 주교동이에요. 그리로 이사를 한 다음에 입학을 했는데, 내가 다녔던 학교가 주교보통소학교였어요. 나중에 방산소학교로 개칭됐다가 아예 없어지고 그 자리에 시장이 조성됐지요. 그게 오늘날의 방산시장이에요.”

방산소학교 학생들은 봄‧가을의 원족(소풍)을 주로 창경원(창경궁)으로 가서 동물들을 구경했다. 주교동에서 창경원으로 가자면 청계천을 건너야 한다.

“창경원에 원족 갈 땐 방산동에서 종로5가 쪽으로 가로지른 방산교를 건너야 했지요. 당시 청계천에는 24개의 다리가 있었거든요. 광교, 수표교, 관수교, 오간수교 등이 대표적인 다리였는데 특히 수표교는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석이 세워져 있는 중요한 다리였지요. 다리의 폭은 전찻길이 나 있을 만큼 널찍한 것도 더러 있었지만, 대체로는 양쪽에서 오는 우마차가 간신히 교차할 수 있을 만한 너비였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청계천 다리 밑’ 하면 뭐 떠오르는 사람들 없어요?”

청계천의 다리들마다 그 밑에 터를 잡고 지냈던, 당시로서는 썩 특별할 것 없는 시민들이 있었다. 거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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