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관원의 규제일변도 정책, 현실과 안 맞다

  • 입력 2022.05.01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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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잔류농약 검출 중심의 친환경인증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충남 홍성의 한 친환경 논에 10여 마리의 오리가 모여 있다. 한승호 기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잔류농약 검출 중심의 친환경인증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충남 홍성의 한 친환경 논에 10여 마리의 오리가 모여 있다. 한승호 기자

친환경농업에 대한 국가의 성격 규정도, 시민들의 친환경농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점차 달라지는 상황에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원장 안용덕, 농관원)의 친환경농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해 3월,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엔 ‘범(凡)지구적 범위의 농약 오염 위험’이란 기사가 실렸다. 요약하자면 전 세계 농지의 64%(약 2,450만㎢, 구(舊)소련보다 넓은 면적)가 하나 이상의 농약에 오염된 위험이 존재하는 농지이며, 31%는 특히 오염 상태가 심각한 고위험 농지였다.

해당 기사에 첨부된 세계지도는 각국의 농약 오염위험도를 색깔별로 표시했다. 한반도는 ‘고위험군’임을 알리는 짙은 빨간색으로 채색됐다. 생산량 증대를 위해 대대적인 농약·제초제 사용을 권장해 왔던 현대 한국의 농업정책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사실상 대한민국 대부분의 농지(친환경 인증농지 포함)에 잔류농약이 혼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과거부터 이어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현행 친환경인증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잔류농약 검출 여부’에 친환경농민 평가 기준을 집중시키는 만큼, 잔류농약이 혼입된 농지에서 농사짓는 농민은 모두 인증취소 등의 규제조치를 가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친환경인증제의 시행 주체인 농관원은 이러한 기조하에서 민간인증기관들이 더 철저히 친환경농민들을 ‘관리’하길 바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친환경농업의 성격 규정도 다시 이뤄지고 있다. 비록 ‘전면적 확대’ 방침은 아니나, 농림축산식품부도 제5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계획에서 ‘과정 중심 친환경인증제’의 도입 필요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농관원의 친환경인증제도, 친환경농업 정책도 시대적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영규 홍성친환경농업협회 사무국장은 “유기농업 발전을 위해선 왜곡된 유기농업 가치를 재정리하고 인식을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며 “친환경농업은 소비자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제공하기 위한 농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하며, 잔류농약 검사만 통과하면 되는 인증제 중심 농업의 틀에서도 벗어날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자재 중심의 고투입 농업과 맞닿아 있으므로, 우선 양분과 토양관리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히려 강화되는 규제일변도 정책

그러나 농관원은 지금도 기존 친환경인증제를 유지한다. 아니, 오히려 더 규제일변도 정책을 강화한다. 농관원은 지난 1월부터 검사대상 잔류농약 성분을 기존 320종에서 464종으로 대폭 늘렸다. 이와 함께 잔류농약 검사성분 확대에 따른 ‘부적합 농산물 증가’ 우려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농관원 본원을 중심으로 시험연구소와 농관원 9개 지원이 참여하는 ‘농산물 부적합 신속 대응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올해 7월부턴 민간인증기관들의 농가 대상 친환경농산물 생산과정조사(사후관리)를 위한 관리지침도 강화된다. 정확히는 ‘조사할 내용’이 대대적으로 추가된다. △경영관련 자료를 기록하고 있는지 여부 △제초제 사용 여부 △농약·화학비료 사용 여부 △기타 인증기준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하면 됐던 기존 생산과정 조사와 달리, 개편된 생산과정조사 보고서엔 기록해야 할 내용이 대대적으로 늘었다.

잔류농약과 관련해 ‘검출 여부’만 확인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생산과정조사 시 농관원·지자체·유통업체·자체 검사 등 일체의 검사결과 및 통보내역 확인을 농민에게 요청해야 한다. 농자재 사용 내역에 있어서도 사용 장소, 사용일자, 사용수량, 자재종류 등을 농민에게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 농관원은 신규 생산과정조사 보고서 적용을 오는 6월까지 시범적용하고 7월부터 일괄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한 친환경인증기관 관계자는 “조사내용 개편 이후 기존에 20~30분이면 끝나던 생산과정조사가 1시간 이상으로 증가했다”며 “마치 검사가 피의자를 수사하는 것마냥, 인증심사원이 농민을 붙잡고 1시간 동안 시시콜콜한 것까지 조사하는 방식에 대해 현장 농민들도 ‘농관원은 농민들을 지나치게 범죄자 취급하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한다”고 증언했다.

잔류농약에서 100% 자유로운 농지가 있을까?

‘범죄자 취급’까진 아니어도, ‘어떤 이유로든 잔류농약은 극소량도 검출돼선 안 된다’는 농관원의 기조는 확고하다.

충남 홍성군에서 유기농업 실현 노력을 기울여 온 조대성 홍성유기농영농조합 상임대표는 “과거 하우스 딸기를 재배하던 땅을 임대해 상추를 길렀는데, 그 상추에서 잔류농약 허용 기준치의 500분의 1 수준의 농약이 검출돼 해당 농지의 인증을 취소당한 사례가 있다”며 “500분의 1 수준의 농약은 농민이 방제 목적으로 사용 시 결코 이 정도만 검출될 순 없는 극소량이다. 농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부러 친 농약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어 “대다수의 친환경농민이 임차농인 상황에서, 과거 ‘관행농업’이 이뤄지던 농지를 빌려 친환경농사를 짓는 사례가 많다. 게다가 최근 드론 등을 활용한 항공방제도 이뤄지는 상황에서, 잔류농약으로부터 100% 안전한 농지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그럼에도 과도하게 잔류농약 검출 중심 친환경인증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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