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을 아스팔트로

  • 입력 2022.05.0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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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협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어째서 농협은 농업의 미래를 건 농민들의 투쟁에 함께하지 않는 걸까.

농민들의 상경투쟁은 이제 한 해에 몇 차례씩 연례행사가 됐다. 툭하면 몇 시간을 달려와 길바닥에서 먼지바람을 맞는 일이 그들이라고 어찌 기껍겠는가만은, 꼬리를 물고 폭락하는 농산물과 농업·농촌을 짓누르는 가혹한 정치가 농민들을 계속 아스팔트로 내몰고 있다.

투쟁 현장엔 농민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농민단체 직원들에서부터 학자·연구자·정당인·법조인, 심지어 몇몇 언론인들까지 취재가 아닌 ‘농업 관계자’ 자격으로 참석해 팔뚝질을 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 유독 농협 임직원들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쌀값폭락과 CPTPP처럼 아주 시급한 국면에 이르러서야 전국 1,118명 조합장 중 극히 일부만이 그들끼리 목소리를 모아내는 정도다.

농협은 농민들을 주인으로 두고 있는, 오직 농업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농민에 대한 신의와 도의는 둘째치고라도 농협 임직원들 스스로가 농민들과 운명공동체 관계에 있다. 농업을 지키기 위한 농민들의 피맺힌 절규가 터져나오는 순간에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다는 건 어느 관점에서 보나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농민들과 선을 그으려는 직원들의 관료주의, 투쟁현장에까지 나갈 순 없다는 임원들의 권위주의가 농협에 비정상적인 문화를 만들어놨다. 농협중앙회장과 각 지역조합장들이 조그마한 물꼬만 터 주고 독려하면, 농민들의 투쟁현장엔 매번 최소한 수천명의 목소리가 더해질 것이다.

지역농협의 의식 있는 직원들이 스스로 나서 ‘CPTPP 반대’를 외친 지난달 22일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의 집회는 참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농촌이 붕괴되면 우리도 온전할 수 없다. 농업·농촌이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고 농민들의 노동과 생산물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농민들과 연대해 CPTPP 가입 저지에 적극 나서자.” 그날 농협 직원의 입에서 나온 이 당연한 말에, 기자는 어이없게도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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