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권 주유소에서 ‘농협’ 이름이 빛난다

인천 남동농협주유소, 쌀·양파·고구마 등 농산물 증정 눈길

‘농업협동조합’ 정체성 각인시키며 농가소득에도 작은 도움

  • 입력 2022.05.01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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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27일 인천 남동구 수산동 남동농협주유소에서 차량에 기름을 넣은 고객이 김희경 소장으로부터 증정품인 고구마를 건네받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달 27일 인천 남동구 수산동 남동농협주유소에서 차량에 기름을 넣은 고객이 김희경 소장으로부터 증정품인 고구마를 건네받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인천 소래포구에서 남동구청으로 이어지는 왕복 6차선 도로.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비교적 한산한 느낌을 주는 이 길목에 심심찮게 대기차량이 늘어서는 주유소가 있다. 지역에서 ‘농산물 주는 주유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남동농협주유소다.

농협주유소는 한국석유공사·한국도로공사와 함께 정유사의 기름을 대량구매함으로써 양질의 기름을 싸게 판매하는, 이른바 ‘알뜰주유소’의 한 형태다. 하지만 이곳 남동농협주유소의 인기 비결이 단지 저렴한 기름가격에만 있지 않다는 건 방문하는 고객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셀프주유기로 주유를 마친 고객들은 영수증을 들고 운전석이 아닌 사무실로 달려간다. 영수증을 확인한 직원이 포장된 농산물을 건네면, 예외없이 밝은 표정으로 받아들고 목례를 건넨다. 휘발유 5만원, 경유 3만원 이상 주유 시 농산물 증정. 이것이 남동농협주유소의 영업전략이다.

아이디어를 낸 건 한윤우 조합장이다. 지난해 11월 주유소를 인수해 개장하면서 조합 광고선전비 일부를 사용해 고객들에게 쌀 500g을 증정하기 시작했고, 이후 양파·대파·고구마에 이르기까지 품목을 바꿔가며 500g 안팎의 농산물 증정을 상시행사로 안착시켰다.

한윤우 인천 남동농협 조합장.
한윤우 인천 남동농협 조합장.

구매는 조합 대 조합의 직거래로 이뤄진다. 처음 시작한 쌀의 경우 조합장끼리 친분이 있던 평택 안중농협에서 구매해왔고 이후엔 양질의 농산물을 찾아 전혀 면식 없던 조합에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현재 증정 중인 고구마의 경우 품질이 아쉬울 때 조합장이 직접 납품조합에 전화를 해 시정을 요구한 일도 있다. 때문에 사은품이라 해도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며, “이 농산물을 어디서 살 수 있냐”는 문의도 이어지는 등 납품조합 농산물의 홍보효과까지 나타나고 있다.

또한 품목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시장가격이 떨어진 농산물을 택해 농민들을 응원하려는 마음도 담고 있다. 한윤우 조합장은 “도시농협으로서 미력하나마 농협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생산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진행하다 보니 보람을 크게 느껴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개장부터 지금까지 남동농협주유소의 증정용 농산물 구매 총액은 9,250만원. 중량으로 치면 쌀·양파 각각 7.5톤, 대파 5톤, 고구마 10톤이다. 개별품목의 수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엔 미미하지만, 도시민들에게 농협의 정체성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수급불안 농산물 등에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작지 않다.

최근엔 타 농협주유소들로부터 농산물 증정사업에 대한 문의도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성급한 가정이지만, 만약 전국 662개 농협주유소에서 일제히 농산물 증정이 이뤄진다면 수급조절 자체에도 상당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봄·여름으로 접어들수록 남동농협주유소의 농산물 증정은 더욱 활기를 띨 가능성이 있다. 오이·토마토·포도 등 남동농협 관내 생산 농산물들의 출하가 이어지는 데다, 주유소 경영이 궤도에 오르면 주유소 자체 예산으로도 농산물을 구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치솟는 주유소의 인기에 남동농협 스스로가 재미를 붙이고 있다. 인수 직전까지 심각하게 저조한 매출로 남동농협 임원들의 우려를 샀던 주유소가 현재 전국 농협주유소 중 상위 2.8%의 일매출을 올리며 고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출퇴근길에 이곳을 애용한다는 인천 부평구의 이근재씨는 “주유소에서 휴지 같은 것보다 농산물을 받으니 더 요긴하고 ‘이번엔 뭘 주려나’ 기대하는 재미도 있다. 역시 농협 답다는 생각이 들고, 농민들한테도 도움이 된다 생각하면 정말 잘 하는 일 같다”고 말했다.
 

오후 2시경, 하루 중 비교적 한산한 시간임에도 남동농협주유소 입구에 주유를 하기 위해 줄지어 대기 중인 차량들이 보인다.
오후 2시경, 하루 중 비교적 한산한 시간임에도 남동농협주유소 입구에 주유를 하기 위해 줄지어 대기 중인 차량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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