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총성 없는 전쟁

  • 입력 2022.05.01 18:00
  • 기자명 김승애(전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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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애(전남 담양)
김승애(전남 담양)

농사를 짓는 집이지만 모든 먹거리를 생산할 수는 없기에 식탁물가엔 도시사람 못지않게 민감하다. 농촌이어서 쌀밥을 주로 먹지만 그래도 면 종류나 빵 종류를 안먹고 살 수는 없는데 장보러 가기가 두렵다. 나 같은 촌부도 빵 한 조각, 라면 한 봉지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밀 산업의 현재를 살펴보자. 쌀이 첫 번째 주식이고 밀로 만든 음식은 두 번째 주식이라 할 만하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국민 한 사람의 연간 쌀 소비량은 61.0kg, 밀은 32.2kg, 밀이 두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밀의 자급률은 2021년 통계에 따르면 0.8%란다. 거꾸로 말하면 밀은 99.2%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1961년에 17만2,000톤을 생산하던 밀이 올해는 약 2만톤 정도 생산될 예정이라 하니 식용 밀 수입만 250만톤을 넘어서는 현실에서 2만톤의 우리밀은 정말 귀한 식량 아닐까. 그런데 정부는 수매하여 비축할 곳이 적다고 우리밀 2만톤 중 일부를 수매할 수 없다고 한다. 과연 밀 자급률을 높이고 싶은 것인지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2025년까지 5%로 올리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있다. 어떻게 가능할지 진짜 궁금하다.

밀 자급률 제고는 전체 곡물자급률을 빠르게 높일 수 있는 길이다. 밀은 벼와 이모작을 이루기에 겨울철 유휴 농지, 비어있는 논을 적극 이용한다면 100% 자급도 가능할 정도라고 우리밀지키기 운동본부는 말한다. 밀을 100% 자급할 경우 우리 곡물자급률은 얼마나 올라갈까? 농림축산통계연보 자료를 통해 볼 때 현 21.7%가 39.4%로 쑥 올라간다. 그리고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자그마치 84.8%로 껑충 뛰게 된다. 쌀과 밀이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크기 때문이다.

곡물자급률 21.7%라는 수치는 하루 세 끼 밥상 중 한 끼도 온전한 우리 농산물이 아니라는 계산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식탁 위에 놓여진 많은 먹거리들이 어디에서 왔는가 살펴보는 눈도 가져야 한다.

수입밀보다 우리밀이 좋은 점은 많다. 수입밀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프리하베스트(수확 전 제초제 살포)라는 농법으로 일시에 수확한다고 한다. 이 제초제 성분엔 글리포세이트라는 성분이 있어서 인체에 해롭다는 것은 이제 국민들이 많이 알고 계신다. 또, 수입은 기후위기 시대에 운송과정에서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면 겨울에도 탄소저감이 일어나서 기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집만 300평 보리농사를 지었다가 콤바인을 구하지 못해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은 적이 있다. 지금 소수의 농민이 밀농사를 새롭게 지으려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정부는 더 많은 양의 수매계획을 세우고, 대기업에서 농민과 우리밀을 계약재배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면 농민들도 밀농사를 확대하여 소득을 높이고, 국민은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곡물자급률 및 식량자급률은 높아지고, 탄소배출도 줄어들지 않을까싶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두 달이 되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는 점점 가벼워진다. 시간이 지나 가을이 되고 파종시기마저 놓치면 올해뿐 아니라 내년까지 어려워질 것이고, 식량수출 금지를 하는 나라들이 더 늘어난다면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 무역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쉽게 판명되고 있지 않은가!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상향하며 공공 식량비축시설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등 식량자급률 목표치 달성을 위한 실행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약속하지는 않았기에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지 더더욱 궁금하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식량문제, 국민 먹거리문제를 가장 우선시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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