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근대문화거리 테마공원 ‘왜색’ 논란

  • 입력 2022.04.24 18:00
  • 기자명 정경숙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정경숙 기자]

강원도 철원군에 들어설 근대문화거리의 ‘장터거리’ 공간. 1930~40년대에 번화했던 시장을 재현하려는 곳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소이산’으로, 일제에 의해 참배를 강요당한 신사가 있었다. 철원독립운동사업회 제공
강원도 철원군에 들어설 근대문화거리의 ‘장터거리’ 공간. 1930~40년대에 번화했던 시장을 재현하려는 곳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소이산’으로, 일제에 의해 참배를 강요당한 신사가 있었다. 철원독립운동사업회 제공

강원도 철원군이 2015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근대문화거리 테마공원’이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다. 철원독립운동사업회(회장 김완동)를 비롯해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시대를 찬양하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철원군이 갈등진화에 나섰으나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사업은 이명박정부가 비무장지대(DMZ) 일원의 생태문화자원을 중심으로 한 관광 활성화 목적으로 2009년부터 추진한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조성’ 사업 중 하나다. 강원도에서 5개 군 16개 지역이 사업지로 선정됐고, 철원군(군수 이현종)은 근대문화거리 테마공원·소이산지뢰숲길·두루미생태학교·궁예태봉국 테마파크 등 4개 사업을 제안해 채택됐다. 2015년부터 추진한 사업은 2016년 착공해 올해 7월 완료될 예정이다.

논란의 핵심은 민족사 정체성 확보 여부다. 철원 근대사 중 1930~1940년대가 가장 번성했기에 당시 중심가를 재현하겠다는 의도가 공분을 샀다. 이 시기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적·경제적 수탈을 가장 극악하게 펼쳤던 때다. 더구나 근대문화거리 일대는 일제가 수탈을 전제로 원주민인 철원주민을 쫓아내고 친일파 지주와 일본인을 불러들여 정착시킨, 이른바 신도시였다. 이들은 수도시설까지 갖춘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으나, 신도시 밖 철원주민들은 비참한 생활과 탄압을 견뎌내야 했다.

사업조감도가 발표된 2018년, 철원독립운동사업회는 철원군에 간담회를 요구했다. 철원독립운동사업회는 당시 일본인과 친일파들만의 풍요와 번성을 철원역사의 자랑이라며 재현하는 철원군청의 역사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강원도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지속적인 항일운동이 펼쳐진 곳이어서 ‘만세거리’로 불려왔음도 상기시켰다. 만세거리 일대에 박용만 선생을 비롯한 걸출한 항일운동가들의 생가가 있었던 사실도 알렸다. 따라서 ‘만세거리’ 또는 ‘항일운동거리’로 사업이 전면수정돼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냈다. 당시 담당자는 거세게 반발했고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현재 재개된 비판에 철원군은 이미 진행된 사업을 수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사업지 일부에 항일운동가 추모정원을 조성하고, 적절한 지점에 추모비를 세우며 역사전시관에 항일운동사를 전시하겠다고는 했다. 완공 후 철원독립운동사업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적절한 시기에 수정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철원군의 한 농민은 “근대문화거리가 들어선 곳은 철원 민초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개간하면 농지를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사비 들여 개간한 땅을 뺏기고, 어린 딸들이 저임금에 착취당한 제사공장이 있으며, 자식들이 위안부로, 징병으로 끌려가던 역이 있으며, 참배를 강요당한 신사가 있던 소이산이 바로 뒤에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왜색거리 복원이 가당한가?”라며 개탄했다. 지역 향토사 연구소 ‘현강’의 이우형 소장은 “차라리 일본인도 놀랄 만큼 철저히 왜색거리로 조성하라. 대신 항일운동역사를 복원한 ‘만세거리’로 포위하게 하라”고 일갈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