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리했는데 쌀 5% 줄여 심으라니 … 양곡정책, 현장과 또 엇박자

농민들 “최저가 경쟁입찰 시장격리 같은 ‘일방통행’식 폭력” 비판

농식품부, 타작물재배 지원금 없애고 지자체·농협에 부담 떠넘겨

  • 입력 2022.04.22 15:59
  • 수정 2022.04.24 19:56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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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지역별 벼 재배감축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경기도 평택의 한 농협 앞에 '벼 재배면적 5% 줄여 쌀값 하락 막아내자'는 현수막이 걸렸다.농민 제공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지역별 벼 재배감축 목표를 설정한 가운데 경기도 평택의 한 농협 앞에 '벼 재배면적 5% 줄여 쌀값 하락 막아내자'는 현수막이 걸렸다.  농민 제공

 

‘최저가 경쟁’을 붙여 쌀 시장격리를 시행해 비판받았던 정부가 엇박자 양곡정책으로 또 한 번 빈축을 사고 있다. 농민들은 이미 일년의 벼농사 계획을 세우고 못자리까지 끝냈는데 ‘5% 줄여심기’ 정부방침이 뒤늦게 확정돼 지역 곳곳에 현수막이 걸리는 등 목표달성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현수, 농식품부)는 지난 7일 2022년산 쌀 수확기 수급안정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박수진 식량정책관 주재로 지자체, 농촌진흥청, 농협경제지주 등 관계기관을 포함한 시·도 담당과장 회의를 개최했다. 농식품부가 세운 올해 벼 재배면적 목표는 지난해 73만2,000ha에서 3만2,000ha 줄인(4.4%↓) 70만ha다.

농식품부는 지자체별 감축 목표를 설정해 농업경영체와 ‘벼 재배면적 감축 협약’을 체결한다. 지자체별 감축면적은 △경기 3,220ha △강원 1,274ha △충북 1,476ha △충남 6,048ha △전북 5,122ha △전남 6,698ha △경북 4,090ha △경남 2,735ha 등이다. 벼를 줄여 심겠다고 확약한 농가는 1ha당 공공비축미 109포대(40kg 벼 기준)를 추가 배정받을 수 있으며, 벼 대신 논콩을 재배하는 경우 농가 희망물량 전부를 정부가 매입할 방침이다.

농식품부의 이같은 계획에 지역농협과 지자체는 ‘5% 쌀 재배면적 감축’ 목표달성을 위해 현장농민들을 만나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감산정책에 못자리를 끝낸 농민들을 비롯해 일년 벼농사 계획을 세우고 보급종 종자신청까지 한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지역 농민들은 ‘못자리’를 끝낸 뒤 모 관리에 여념이 없다가 정부의 감산정책을 듣게 됐다. 철원 농민 김용빈씨는 “정부 정책이 현장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최근 못자리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지역농협이 쌀을 전량수매하지 못하니, 농민들은 일찍 벼를 심어 추석 무렵 햅쌀로 팔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면서 “모 관리하는 농민들에게 재배면적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 누가 듣겠나”고 혀를 찼다.

경기도 평택에도 ‘벼 재배면적 5% 줄여 쌀값 하락 막아내자’는 현수막이 걸렸다. 지난 12일 임흥락 전국쌀생산자협회 경기본부장은 “볍씨 담가놓고 논 가는 작업도 하고, 못자리를 이미 끝낸 농민들도 많다”면서 ‘뒷북 감산정책’을 꼬집었고, “정부가 쌀 감산정책을 시행하는 이유가 소비량이 줄어서 쌀이 남아돈다는 것인데, 쌀 남는 게 농민 탓이 아니다. 매년 40만8,000톤의 수입쌀이 시중에 풀려서 문제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임 경기본부장은 “과거 논 타작물재배 정책을 시행할 때는 중앙정부가 안정적인 벼농사 대신 타작목을 짓는 농민들에게 ha당 지원금을 줬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없다. 공공비축미 추가배정은 경기도에선 혜택도 아니다. 결국 지자체에게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아직 못자리를 하지 않은 남쪽지역에서도 정부의 쌀 감산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이무진 해남군농민회 조직교육위원장은 “정부 예산은 투여 안 하고 공공비축 물량과 지자체 예산으로 5% 줄인다는 것은 중앙집중적 농정의 폭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식량자급률이 20% 이하로 내려가고 쌀 자급률도 90% 이하로 떨어진 시점이다. 주곡인 쌀 소비가 줄어든 만큼 식량작물 자급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필요 시 벼를 다시 심을 수 있게 하면서 자급률 낮은 식량작물로 일시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공공비축미 가격에 준하는 수익을 정부가 보존하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처럼 지자체와 농민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진짜 폭력적 행정이다. 지역에선 할당량 맞추려고 난리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벼 재배면적 조정안은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이 논의돼야 하는 문제다. 농민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던 올해 초 쌀 시장격리문제를 비롯해 수급위원회 활동까지 종합적인 양곡정책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다 논외로 하고 재배면적 조정안만 정부가 강행 추진하고 있다. 심각한 정책불균형이다”면서 “특히 기후위기·코로나위기, 전쟁 등으로 식량수급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데 곡물자급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쌀수급안정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엄 정책위원장은 “재배면적과 관련한 사항은 양곡수급안정위원회에서 다루도록 명시돼 있고, 농식품부와의 앞선 간담회에서도 이를 분명히 했는데 보다시피 일방적으로 재배면적 감축을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다”면서 “시장격리 때와 마찬가지로 농식품부가 규정을 무시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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