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토종 산마늘 ‘명이나물’, 이름을 되찾자

울릉도 토종종자 … 수입산과 유전적 차이 뚜렷

역사 담긴 이름 ‘명이나물’, 수입 산마늘에 뺏겨

울릉군, 종자보호·농가소득 위해 이름 수호 부심

  • 입력 2022.04.24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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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고깃집에서 나오는 밑반찬 가운데 종종 크고 납작한 잎채소 절임을 볼 수 있다. 통상 ‘명이나물’이라 부르며 고기에 싸 먹는 이 채소는, 실은 명이나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통념상으로나 규범상으로나 명이나물은 국산·수입산 구분없이 ‘산마늘’을 가리키는 별칭이지만, 진실을 파헤쳐 보면 명이나물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우리 재래종 ‘울릉산마늘’뿐이기 때문이다.

울릉산마늘은 일반적인 산마늘과는 엄연히 다른 품종이다. 꽃잎과 수술, 잎 등 외관으로만 봐도 확연히 구분되며 유전자 염기서열상으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산마늘’이면서 고도가 낮은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잎까지 둥글고 커서 식용 재배용으로는 외래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수한 품종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공전(국내 식품의 공통기준 및 규격) 역시 2020년부터 산마늘과 울릉산마늘을 별개의 품종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파속채소 전문가인 최혁재 창원대 교수가 2011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친 연구로 울릉산마늘이 독립품종임을 입증했고, 울릉군이 이를 근거삼아 울릉산마늘 구분등록을 집요하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명이나물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토종 산마늘의 고유 명칭이다. 해발 700m 이상에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긴 일반 산마늘과 달리, 명이나물(울릉산마늘)은 잎이 둥글고 어디서나 잘 자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울릉군 제공
명이나물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토종 산마늘의 고유 명칭이다. 해발 700m 이상에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긴 일반 산마늘과 달리, 명이나물(울릉산마늘)은 잎이 둥글고 어디서나 잘 자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울릉군 제공

문제는, 품종 자체는 구분됐으되 울릉산마늘의 고유명칭인 ‘명이나물’이 식품공전상 산마늘·울릉산마늘 모두에 이명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울릉군은 식약처를 상대로 한 ‘1차전’에서 품종 구분등록에 성공한 이후 다시 ‘2차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목표가 바로 일반 산마늘로부터 명이나물 명칭을 회수하는 것이다.

명이나물은 비교적 어원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작물이다. 고려~조선에 걸친 공도(空島) 정책으로 사람이 살지 않던 울릉도에 1882년 고종이 특별 칙령으로 이주를 명했는데, 식량난에 허덕이던 초기 이주민들이 쌓인 눈을 뚫고 나온 산마늘을 먹고 명을 이었다 해서 ‘맹이(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1930년대 자료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후 명이나물은 국산·수입산을 가리지 않고 산마늘의 대명사가 돼버렸지만, 지역의 역사가 담긴 귀한 이름인 데다 시중에서 산마늘·울릉산마늘이 구분 없이 재배·유통·소비되는 문제가 고착화되면서 명칭을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대두된 것이다.

울릉산마늘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실무적 구분을 위한 공식 용어일 뿐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울릉산마늘’이란 이름은 예컨대 시중에 흔한 고사리 가운데 ‘울릉도 고사리’ 정도의 느낌을 줄 뿐, 별개의 품종임을 인지시키기 어렵다. ‘울릉산마늘’보다 ‘명이나물’이라는 이름이 훨씬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이나물이 울릉산마늘의 고유명칭으로 인정받으면, 울릉산마늘과 외래종 산마늘은 ‘명이나물’과 ‘산마늘’, 혹은 ‘명이나물’과 ‘신선초’의 이름으로 시장에서 경쟁하게 된다. 마케팅만 잘 한다면 울릉도 지역특화 내지 국산특화 작물로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며 중국산 산마늘 절임의 입지가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종자보호 관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앞서 언급했듯 울릉산마늘은 일반 산마늘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수한 재배편의성과 식용적합성을 띤다. 하지만 명칭 구분이 모호하다 보니 실제로 종자산업 현장에서 구분 없이 해외에 반출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고유의 유전자원으로서 확실히 명칭을 구분해 관리·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약 해외에 무료 반출된 울릉산마늘이 신품종으로 개량되면 우리가 로열티를 내고 들여와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민웅진 울릉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는 “해외로 나간 우리 종자에 역으로 우리가 로열티를 부담하는 건 구상나무·라일락 등의 사례로 이미 겪은 바 있다”며 “식품공전상 ‘명이나물’ 명칭 정리와 함께 인터넷 포털검색의 기준이 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정정을 요청하는 등 명칭 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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