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시장격리,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 재량권 남용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정부의 전반적인 쌀 시장격리제 문제 진단

  • 입력 2022.04.22 00:05
  • 수정 2022.04.22 16:08
  • 기자명 김태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산지 쌀값이 줄곧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20kg 산지 쌀값은 4만7,774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5만5,736원)에 견줘 14%, 수확기(10~12월) 평균 쌀값(5만3,535원)에 비해 10.7% 떨어진 수치다.

이에 김기흥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부대변인은 지난 21일 브리핑을 통해 정부에 2021년산 쌀 초과공급 물량(27만톤) 중 지난 2월 격리된 14만5,000여톤을 제외한 잔여물량(12만5,000여톤)에 대해 추가 시장격리 조치를 조속히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시행된 ‘2021년산 쌀 시장격리’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다룬 자료가 나와 주목된다.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하승수 변호사)은 지난 19일 ‘농본 정책 브리핑 4호’ 자료를 통해 정부의 쌀 시장격리 절차 및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농본에 따르면 추곡수매제가 폐지된 2005년부터 2021년산까지 총 9개년산 쌀에 대한 시장격리가 12회에 걸쳐 이뤄졌다. 시장격리가 이뤄진 방식은 수확기 공공비축과 동일한 기준으로 매입하는 ‘공공비축방식’이 7회, 농식품부가 결정한 예정가격에서 최저 입찰가격부터 낙찰하는 ‘역공매 방식’이 5회였다.

농본은 그중 지난 2월 8일 ‘역공매 방식’으로 시행된 ‘2021년산 쌀 시장격리’의 3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법률적 차원의 제도화 이후 처음 시행된 시장격리인 만큼 법에 규정된 대로 시장격리를 실행하는 것은 향후 시장격리의 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농식품부의 ‘뒤늦은 시장격리’

첫 번째로 농본은 정부가 2021년산 쌀 시장격리를 시행하면서 2020년 개정된 「양곡관리법」의 개정 취지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양곡관리법 제16조 제2항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미곡의 경우 매년 10월 15일까지 가격 안정을 위한 양곡의 매입 또는 판매 계획 등 수급안정대책을 수립하고 공표해야 한다. 다만, 기상 여건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해당 연도 생산량 예측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농본은 “해당 수급안정대책에는 ‘쌀 시장격리’와 같은 대책도 포함된다”면서 “예외적으로 기상 여건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해당 연도 생산량 예측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지만, 2021년의 경우에는 기상 여건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농식품부는 쌀 시장격리 대책을 제때 발표하지 않았고, 실제 시장격리는 2월에 돼서야 부분적으로 이뤄졌다”며 “이는 자동격리라고 불린 양곡관리법의 개정 취지를 전혀 지키지 않은 것으로 농식품부 장관이 재량권을 자의적으로 일탈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공매 최저가 입찰 방식은 ‘위법’”

두 번째는 시장격리 방식에 대한 지적이다. 앞서 정부는 2021년산 쌀 20만톤 시장격리를 시행하면서 그 방식을 ‘최저가 입찰’로 했는데, 당초 계획한 물량에 못 미치는 14만5,280톤(72.6%)이 평균 6만3,763원(벼 40kg)에 낙찰됐다.

농본은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 제4조와 제5조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시장격리를 위한 미곡 매입 절차는 공공비축미 매입 절차를 준용해야 한다”고 설명한 뒤 “정부는 2021년산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으로 벼 40kg 기준 7만4,300원으로 확정한 만큼 시장격리를 위한 매입가격도 위 가격을 따라야 적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부가 양곡관리법 제10조 제3항(공공비축양곡의 매입·판매가격은 매입·판매지역의 당시 시장가격으로 한다)과 같은 법 시행령 제13조의2(법 제10조 제3항에 따른 시장가격은 공개입찰을 통하여 결정된 가격이나 매입 및 판매 당시 통계청장이 조사한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를 근거로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시장격리 가격을 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의적인 법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농본은 “시장격리를 위한 매입은 공공비축미 매입과 매입시기, 매입절차를 같이하도록 하는 것이 규정의 취지로 볼 수 있다”면서 “2021년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은 통계청장이 조사한 가격을 기준으로 이미 정해진 상태였는데, 시장격리를 위한 매입가격만 따로 최저가 역공매 입찰 방식으로 정한 것은 ‘양곡관리법’ 및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조치로 판단된다”고 했다.

생산자 ‘협의’ 절차 무시

시장격리 방식과 물량 등에 대해 생산자와 협의해야 하는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곡관리법 제16조 제2항에서는 미곡의 경우 기획재정부장관 및 생산자단체 대표 등과 ‘협의’하여 수급안정대책을 수립·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조 제5항을 보면 생산자단체 대표 등과의 협의기구 구성·운영 및 협의절차에 관련된 사항은 농식품부 장관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정된 규정에서는 농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여 15명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된 양곡수급안정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는데, 해당 위원회는 미곡수급안정대책의 수립 및 시행 등을 ‘논의’하게 돼 있다.

이에 대해 농본은 “분명 양곡관리법에서는 생산자단체 대표 등과 ‘협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법률에서 사용되는 ‘협의’의 의미는 다양할 수 있지만, 최소한 ‘협의’라고 하면 협의상대방이 제출한 의견에 대해 책임 있게 검토하고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한 뒤 “하지만 법률에서는 ‘협의’라고 표현했는데, 하위 규정에서는 위원회에서 ‘논의’하는 정도로 바꿔놓았고, 실제로는 의견을 무시하는 식으로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상위법의 취지를 무시한 행태라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부담은 농민 탓?

이 외에도 농본은 쌀값을 보전하느라 재정부담이 크다는 정부의 주장을 두고, 이에 대한 책임을 농민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연도별 정부의 양곡 매입 및 방출 현황’ 자료를 확보, 분석한 농본은 “정부가 재정부담을 지는 이유는 매입 금액보다 싼값에 방출하기 때문으로, 이는 오히려 농민 소득보전이 아니라 소비자 지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 책임을 생산 측면에만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동시에 정부의 재정부담은 재정 운용 방식에서 비롯되는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농본은 “농식품부는 시장 격리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채권 발행을 통해 마련하는데, 올해 예산 기준 시장격리곡 원금 상환액이 약 2,800억원인 반면 이자만 24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면서 “재정부담을 이유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채권을 발행하고 이로 인한 이자 지출만 매년 수백억에 이른다”고 전했다.

앞으로 쌀 시장격리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했다. 농본은 “중단기적으로 시장격리제는 쌀 과잉 생산에 대한 사후적, 임시적 조치로 활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재정 운영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채권 발행이 아니라 본예산 편성을 통해 추가적인 금융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현재 국회에 발의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가 신속하게 논의해서, 관료들에 의한 자의적인 정책 결정의 소지를 없애고, 말 그대로 자동시장격리제가 될 수 있도록 하루속히 법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