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봄날의 희망

  • 입력 2022.04.17 18:00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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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이(전남 구례)
정영이(전남 구례)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리산 아래 옴팍한 분지인 구례 산천에 봄은 찾아왔고 화양연화를 연발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 눈길이 가는 곳 어디나 꽃천지이고 겨우내 새 움틀 준비를 한 동토에는 농민들의 발길과 손길이 가고 나면 느릿느릿 멈춤 없는 예술작품이 가뭄에 애타하는 농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과 날씨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명작을 감상하듯 고된 노동 뒤에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희열이 농촌에 사는 혜택이기도 하다. 자연은 무심하게 계절에 거스름이 없이 제 길을 가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여전히 소용돌이 속인 듯하다.

온갖 언론이 새로운 대통령이 똬리를 틀 곳과 인선, 새 정부 구상으로 도배되는 사이 사람들은 걱정 반, 회의 반 등등의 심경을 토로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새로운 선거판은 지역소멸 위기 여덟 번째, 인구 2만5,000명 내외라는 작은 지역 구례를 휩쓸고 있다. 도지사와 교육감, 군수와 도의원, 군의원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보들의 선거사무실이 읍내는 물론이고 면 단위에도 차려지면서 한발 건너 한 사무실이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난립’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고 할 만큼 과거 어느 선거 때보다 많은 후보가 출사표를 냈고 후보와 정책을 알리는 현수막은 ‘누가 누가 더 큰 현수막을 거나!’ 현수막 크기로 당선이 결정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대형현수막으로 도배가 되었다. ‘현수막에 적시한 천편일률 정책들을 가장 찬찬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군민일까? 후보자 본인일까?’ 피식 웃음이 나는 생각을 하며 후보들이 쥐어짜서 내건 정책보다 각 후보에 대한 저간의 추잡한 과오와 흠집거리가 더 많이 회자되는 것을 뉘라서 막을쏜가?

식량자급률, 곡물자급률이 낮은 나라에서 기후재난과 질병, 전쟁 등으로 인해 물가가 비상이고 농산물 수입가격은 오르고만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지역 내 먹거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직을 걸겠다는 후보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육하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것을 공약 1호로 거는 후보가 있다면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 머리를 맞대고 실천방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수도 있겠다. 여성친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조례는 통과가 되었지만, 잠자는 조례나 다름없는 유령조례에 생기를 불어넣고 농촌 지역에 맞는 사업을 하여 작은 실천과 변화부터 만들어 가겠다는 후보가 있을까? 관에서 주관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서 일회용 용기나 생수병 없는 기획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그것이 기후재난을 막는데 1%의 기여도 안 될지 모르지만,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낮은 출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에 대해 기대치가 낮은 씁쓸한 날들이지만 그럼에도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각 후보에게 정책협약을 제안할 준비를 한다. 구례는 재작년 수해 이후 시민사회 역량이 성장하고 주민 당사자들의 참여와 행동, 실천이 스스로의 삶을 바꿀 수 있음을 경험하였다. 그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을 변화시켜내기 위한 토론이 이어지고 실천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후위기, 교육, 농업, 여성, 청년, 생태, 통일, 연대 등등의 단위들이 모여 서로 지지하고 견인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역소멸이라는 거대담론이 짓누르는 현실에서 구례만 벗어날 수 있는 묘안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대안을 듣다 보면 머리가 끄덕여진다. 다만, 그것이 예산이 따르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아 선거에 대한 기대를 아니 할 수가 없는 중요한 시기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통하고 또 소통하는 건실한 후보, 마을과 주민, 현장을 찾고 또 찾아 직접 보고, 듣고, 만나는 후보가 당선되어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 같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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