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힘든 건, 재해가 아니고 정책이네

  • 입력 2022.04.17 18:00
  • 기자명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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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내가 사는 곳은 도시근교의 농촌이다. 본래의 행정명칭은 ‘창원군’이었다. 1990년대 중반에 창원군을 쪼개어 인근의 진해·창원·마산, 세 개 시에다가 나눠 붙였다가 다시 세 개의 시를 합쳐서 하나의 거대한 시를 만들었다. 지금은 번지르르하게 이름을 붙여 특례시라고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인구가 100만이 넘어가는 기형적인 기초단체 도시다.

팽창하는 인근 도시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농촌의 질을 높이겠다면서 지금부터 20년 전쯤 전국적으로 많은 농촌의 지역들을 도농 통합하면서 많은 군이 인근의 시와 합병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터 우리 동네 인근의 구멍가게들은 사라지고 부동산 중개 사무소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누가 얼마를 벌었느니’, ‘누가 뭐를 팔았고, 누가 그걸 샀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이 들리면서 인근의 부동산 가격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도시 주변부에서 억대 거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오로지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기 위해 오지의 농촌으로 이사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주변의 만류로 확실히 농촌으로 옮기지도 못한 채 윗대부터 조상들이 500년 간 살아온 이곳에 어정쩡하게 살게 됐다. 그러면서 도시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늘 갈등했다. 땅값의 이자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농사 행위를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면서 늘 농업의 흐름과 농정을 지켜봤다. 농업의 흐름과 농업 정책을 보면서 늘 느꼈던 것은 자연이 농민에게 주는 재해보다는 국가의 정책이 농민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농사를 짓다 보면 농민은 종종 재해를 만난다. 내가 있는 경남지역에서, 내가 짓는 단감 농사 같은 경우 태풍과 냉해가 몇 년 걸러 한 번씩 꼭 찾아와 농민을 식겁하게 한다. 그런 과정을 숱하게 거친 농민들이 재해보험을 요구하고 그 내용이 채택돼, 많이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재해를 입어도 농민들이 쫄딱 망하지는 않을 만큼 보장이 되는 체계가 갖춰졌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재해보험의 이익은 농민보다 주 업무를 맡은 보험사를 향해 있다. 점점 늘려가는 보험사의 이익을 보면 씁쓸하기는 하지만 어쨌건 부족한 가운데서 농민들이 자연재해로부터 쫄딱 망하게 될 위험은 줄었다.

그런 우린 농민들에게, 농민들의 노력과 상관없는 어려움들이 계속 가중되고 있다. 당면해 진행되고 있는 농산물 수입개방의 정책 수순 외에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진행이 예고돼 있다. CPTPP의 가입 예고는 또 다른 가혹한 정책의 예고와 마찬가지다. 우리 농업에 대한 보호조치가 취약하고 부족한 가운데 기존의 개방농정만 놓고 봐도 농민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인데, 더 강력한 개방농정을 예고하니 농민들로선 암담할 수밖에 없다.

필자의 두 아들 부부가 농사를 짓고 있는 상황에서 농정 흐름의 나락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바뀌어 가면서 여러 정책들이 시행됐지만 정치는 농민들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필자가 생각하는 정치라는 것은, 걷힌 세금으로 유용한 재화가 생산되도록 지원해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러한 가운데서 발생하는 지나친 빈부 차이를 권력이 개입해서 일정 정도 조정을 해주는 것인데, 여전히 정책은 가혹할 정도로 산업에서의 농업을 홀대한다. 주변한 내 이웃 다수는 고령의 우리 사회인들에게 주어지는 수당과 농업에서의 작은 소득에만 기대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일하지 않아서 힘든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힘든 것이다.

옛날 농민들은 가혹한 수탈 정치가 무서웠기 때문에 수탈의 앞잡이인 관리들을 피해 무서운 호랑이가 나오는 산으로 도망가 살았다고 하는데, 앞으로 예측되는 개방농정들에 농민들 입장에선 정책을 피해 도망갈 산마저 없으니 냉수 먹고 속이나 비울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서양의 이야기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의 제일 밑에는 희망이라는 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적은 금액이지만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농민수당이 만들어진 것을 지난 시간 우리 농민들은 봤다. 그러니 곧 있을 지방선거에서 경상도는 ‘국민의힘’에, 전라도는 ‘민주당’에 투표하는 지역 투표 말고 농민의 이익을 대변해줄 계급 투표를 해서 제발 조금씩이라도 무언가를 바꿔봤으면 한다. 재해는 어쩔 수 없어도 재해보다 무서운 정부의 정책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로 바꿀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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