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⑬] 봄나물장이 시작되는 곳, 하동 오일장

  • 입력 2022.04.17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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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다른 해 같으면 벌써 봄나물이 지천일 시기인데 2022년은 내가 기억하는 한 봄이 가장 늦게 오는 해인 것 같다. 이러다 봄이네 하다가 아니 여름인가? 뭐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장을 어슬렁거린다. 그래도 3월에서 4월로 숫자가 바뀐지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장에는 봄나물이 지천이겠지 하면서 어슬렁거린다. 그런데 이변이다. 봄나물은, 내가 보고 싶은 봄나물인 참두릅이나 개두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지, 하면서 동동거리는데 눈길을 확 끄는 식재료가 있어 봄나물 따위 다 잊게 된다.

조개다. 본 것도 같고 처음 본 것도 같은 조개들이 봄나물 대신 지천이다.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 하동이라 민물고기와 짠물고기, 혹은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곳에서 서식하는 굴이나 조개들이 흔한 곳이기는 하지만 하동장은 해산물을 파는 좌판이 제법 많은 곳이다. 그 많은 해산물 좌판에는 어김없이 조개들이 있다. 조개 이름을 묻는다. 어떻게 해서 먹는 게 가장 맛있는지도 묻는다. 처음 만난 상인은 아주 많이 귀찮아 하면서 나같은 사람은 안 사는 게 좋다고 쫓으신다. 방법을 알려주면 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손질 자체가 복잡하다고 하면서 자꾸 저리로 가라고 하신다. 그럼 까서 팔라고 하니 싫다신다. 안에 가면 까서 파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리고 가라고 하신다.

거기서 그럴 일은 아니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죄다 조개판이라 그 상인에게 아쉬운 소릴 한 것이 좀 억울한 느낌이다. 조개 이름을 여쭙는다. 우럭조개란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앞에서 쫓기며 들은 그대로 정말로 우럭조개를 까서 파는 상인들은 많다. 파는 상인들만 많은 게 아니고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 작고 마른 체구의 한 노인은 아예 큰 망째로 사서 힘겹게 들고 가신다. 이곳에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식재료인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게다가 손질하는 방법도 일러주면서 동영상으로 촬영도 할 수 있게 해주신다. 이 조개는 껍질을 깐 후 조갯살을 둘러싸고 있는 막을 벗겨내고 지근거리는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게 해먹는 방법도 일러주신다. 이런 식재료를 만나면 무조건 사야 한다. 깐 것도 사고 안 깐 것도 산다.

 

하동 오일장의 한 좌판에서 상인이 우럭조개를 손질하고 있다.
하동 오일장의 한 좌판에서 상인이 우럭조개를 손질하고 있다.

 

봄날의 장은, 특히 4월의 장은 하동 뿐 아니라 어느 지역이든 묘목이나 모종들이 볼만하다. 땅이 있다면 좋아하는 꽃이 필 묘목과 땅에 붙어 자잘한 꽃을 피울 모종들을 넉넉히 사고 싶다. 사고는 싶지만 애써 피하고 지나친다. 가다 보니 파 한 무더기를 놓고 파시는 상인도 있다. 파꽃이 반은 되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귀찮아서 그냥 뽑아온 것이라 하신다. 가위와 비닐봉지를 주면서 잘라가라 하신다. 파꽃이 피면 심이 생기면서 먹을 게 없으니 사지도 않고 먹지도 않지만 나도 그냥 재미로 몇 송이 잘라 들고 자리를 떠난다. 농가맛집을 하고 있는 지인은 개업 초기에 파꽃이 예쁘게 핀 대파를 3관이나 사서 다듬고 보니 먹을만 한 것이 딱 한 줌이었다고 한다.

상인들의 추천을 받아 점심으로 재첩국을 한 그릇 사서 먹고는 거의 유일하게 참두릅과 개두릅을 조금 들고 나오신 상인에게서 약간의 나물들을 사고 부엌으로 향한다. 미역을 불리고 우럭조개를 씻어 건져 미역국을 끓인다. 소고기를 넣거나 들기름에 볶다가 끓이는 미역국보다 정말로 뽀얀 국물이 나온다. 미나리와 함께 무쳐도 본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조개의 감칠맛이 산골 출신의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럽지만 하동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아마 내년쯤엔 나도 좋아서 사러 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먹다 남은 미역국은 내일 아침 식은 밥 한 공기 넣고 폭 끓이면 더없이 부드럽고 감칠맛 좋은 죽이 될 것이다.

4월의 하동오일장에서 만난 우럭조개는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해 조리하는 재미를 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오일장을 가는 이유가 충분하고도 넘치는 곳으로 기록하고 하루를 접는다.

 

4월 초의 하동장에 거의 유일하게 봄나물을 들고 나왔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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