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43] 윗골 사람들

  • 입력 2022.04.10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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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봄이 되면 윗골 사람들은 다시 분주해진다. 가지치기도 하고 감자를 심기 위해서 밭도 간다. 내가 농사짓는 곳이 윗골인데,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에서도 조금 윗쪽에 있는 야산 골자기를 윗골이라 말한다. 500평 내외의 작은 밭들이 작은 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이들 중 너덧 분은 자기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또 서너 분 정도는 남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다. 농막도 서너 개가 있다.

나는 사과나무, 윗집은 감나무, 제일 끝 집은 복숭아 과수원인데 모두 조그맣다. 그외 대부분은 감자, 들깨, 고추, 엄나무 등을 주로 재배한다. 나이는 70대가 서너 분, 60대가 두세 분, 50대가 한두 분 정도다. 한두 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은퇴 후, 노후를 작은 농사를 지으며 흙과 더불어 살고 싶어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이들 농사짓는 이웃들의 공통점은 모두 부부가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연세가 70대 후반인 분들도 부부가 함께 농사짓는다. 농사만을 위해 지역에 내려와 사는 것이 아니라, 노후의 삶 전체를 흙과 함께 그냥 작은 농사지으며 시골이 좋아 지역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분들인 것이다.

평생 국민을 위한답시고 살다가 은퇴 후에도 4년에 18억원이나 받아먹는, 자칭 지도자라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건전한 분들이다. 조금만 벌어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다.

나는 이런 유형의 농민들이야말로 충분히 중요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의식을 하던 의식을 하지 않던,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농촌과 지역 소멸을 막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평생 바쁘게 살다가 은퇴 후에 모든 사람이 농촌이나 지역의 작은 도시에 와서 살아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농업 관련 기관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것이고 각자의 취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농업과 자연, 그리고 생태적 삶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나이와 계층의 사람들을 농촌이나 지역 소도시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은퇴자들의 경우 자녀교육 문제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으니 젊은 층보다 유리할 수  있다. 그 대신 건강관리나 의료서비스 확충·보완, 교통여건 개선, 문화 접근성 확대 등의 조그만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면 가능성은 더 높을 것 같다.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청년농이나 승계농, 후계농의 확보는 우리나라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지상 최대의 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만으로는 농촌과 지역이 유지될 수가 없다. 이들 외에 작은 농사라도 짓고 사는 농민들도 더욱 많아져야  ‘농민 없는 농촌’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네 윗골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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