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기타’와 ‘그밖에’

  • 입력 2022.04.10 18:00
  • 기자명 이희수(경북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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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경북 봉화)
이희수(경북 봉화)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어린 시절, 타인의 주목을 받는 소수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목받지 않기’는 꽤 오랫동안 나의 행동이나 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친척이 사준 옷의 색상이나 모양이 조금만 특이해도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정이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자식들에게 새옷을 사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끝끝내 새옷을 마다하는 자식이 부모님의 입장에선 참으로 야속했겠지만, 나에겐 새옷에 쏟아질 친구들의 시선을 차단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결국 내가 포기한 커다란 새옷은 네 살 아래 남동생의 차지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고모가 내게 사준 책가방도 몇 년을 책 한 권 품어보지 못하고 ‘미취학’ 상태로 있다가 동생 덕에 어렵사리 학교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는 모든 아이들이 책가방 대신 ‘책보’를 메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책가방을 메는 ‘1호가 될 수는 없’었다. 동생이 입학하여 바닥에 끌릴 듯한 가방을 메고 등교를 할 때까지 나는 책보를 메고 다녔다. 그 사이 친구들은 하나 둘 책보 대신 책가방을 메기 시작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교실엔 나와 짝꿍을 포함하여 책보를 멘 아이는 다섯도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주목받는 소수가 되어 초등학교를 마쳤다.

당시, 그렇게 수줍음 많던 내가 책보를 메고 소수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짝꿍 덕택이었다.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책보를 멘 아이들보다 많아졌을 때, 동생이 메고 다니는 가방을 돌려받아 나도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다수의 무리에 섞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보를 든 친구들이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을 때, 책가방을 들어야겠다는 욕구가 더욱 강해져서 짝꿍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 순간 짝꿍의 낙담한 표정을 놓칠 수는 없었다. 이날 이후 나는 더이상 가방을 든 친구들과 책보를 멘 친구들의 숫자를 헤아리지 않았다. 부끄럼 많던 내가 자발적으로 ‘소수’를 선택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짝꿍과의 더욱 돈독한 우정을 얻었고, 소수자로 남는 것이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선이 끝났다. 두 개의 거대정당이 96%가 넘는 사상 유례없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선거가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탄식만을 확인하고, 청와대라는 화려한 화병을 장식할 꽃 한 송이 간택하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도 1위와 2위의 표차가 1%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선의 결과를 얼마든지 바꿀 수도 있었을 3%의 선택이 참으로 야속했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소수 정당은 저주와 욕설로 넘쳐나는 전화 때문에 당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선거결과를 지켜보다가 책보를 메고 다녔던 초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특정후보의 당선여부만큼이나 내가 주목했던 것은 96%가 넘는 압도적 다수에 포함되지 못하고 ‘그밖에’ 또는 ‘기타’로 분류되는 3% 남짓한 사람들이었다. 대체 3%에는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다수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고 소수가 되는 선택을 감행했을까?

아마도 실질적인 농민의 숫자나 농업 예산의 규모도 대략 3% 언저리일 것이다. 3%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96%에 속하는 누군가는 이런 주장을 할지도 모르겠다. 밑빠진 독 같은 농업 농촌 농민을 위해 더이상 예산을 쏟아붓지 말고, 다른 유망한 산업에 집중하자고. 그렇게 아낀 예산으로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는 편이 훨씬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식량안보라든가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기능으로도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설득의 논리를 쥐어짜 본다. 소수의 누추한 책보 속에도 다수의 가방 속에 든 것과 같은 배움의 열망이 있었고, 평생을 이어줄 우정이 있었듯이, 첨단산업에 비해 누추하기 그지없는 농업에도 키우고 먹이고 가르쳐 좋은 가정 일구고 사회에 기여하는 누추하지 않은 꿈이 자라고 있다고. 민주주의 꽃이 피워올리는 좋은 향기는 꽃밭의 크기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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