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재배 유도하더니 이제 와 불법 취급, 명백한 생존권 침해”

시흥 호조벌 시설재배 농민들, 논 위 하우스 원상복구 명령에 극렬 반발
임병택 시장 “투기 잡기 위한 목적이 커 … 방법 찾아볼 테니 시간 달라”

  • 입력 2022.04.04 10:26
  • 수정 2022.04.04 10:2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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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일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하중동·매화동 등 호조벌 평야에서 시설재배를 하는 농민들이 시흥시농업기술센터를 찾아 원상복구 명령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하중동·매화동 등 호조벌 평야에서 시설재배를 하는 농민들이 시흥시농업기술센터를 찾아 원상복구 명령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농업의 산실, 호조벌 평야의 보존을 위해 시정에서 계획한 경관 사업이 지역 농민들 사이에서 극심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시가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면서 투기가 의심되는 훼손 지역뿐만 아니라 실제 영농이 이뤄지고 있는 논 위의 하우스들까지 원상복구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시설재배 농민들은 이전 시정에서 영농소득을 이유로 시설재배를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농정에서도 쌀 소비량 감소를 강조하며 타 작물 재배를 권장해 온 만큼 이제 와 원상복구를 강제하는 것은 생존권 침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시흥시는 그간 시 전역을 북부시가지권역·중심시가지권역·역사자연권역·해안문화산업권 4개 권역으로 나눠 각각의 특색에 맞는 경관사업을 추진해 왔다. 시흥시는 지난 2020년 말 2년에 걸쳐 재정비한 새 사업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중 ‘역사자연권역’의 핵심인 호조벌 평야의 경우 훼손 지역을 복구하고 적치물 등의 경관위해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호조벌 농민들이 원상복구 명령을 처음 접한 것 또한 시흥시의 새 계획이 윤곽을 드러낸 그 무렵이었다. 시흥시는 지난 2020년 9월 “방대한 행정동에 걸쳐 사료적 가치가 높은 호조벌에  전용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집중 단속에 나섰다. 당시 단속은 주로 농지 성토행위 근절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중장비를 동원하는 성토작업이 농로 및 수로의 이용에 막대한 지장을 줘 민원이 빈발했고, 지목변경 없는 농지의 전용과 불법 하우스의 설치가 도시경관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령(개발제한구역법)」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 내 허가나 신고 없는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공작물 설치, 토지 형질변경, 토지 분할 등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다. 이날 찾아온 농민들은 대부분 지목변경 없이 논을 메운 뒤 설치한 하우스에서 작물을 키우다 문제가 됐다. 수도권 지역의 높은 공시지가 탓에, 이를 기준으로 하는 이행강제금이 적게는 농가당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 규모로 산출됐다. 시흥시 건축과는 불법행위 사실 및 행정처분 경고를 위해 지난해 말 적발된 농민들에게 다시 한번 안내문을 보냈다. 

안내문에 적힌 원상회복 시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농민들은 ‘시흥시농민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최승길, 대책위)’를 구성하고, 지난 1일엔 시흥시농업기술센터 앞에서 트랙터까지 대동한 집회를 열었다. 농민들은 “정부는 쌀 생산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농민들이 논을 밭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도록 했고, 시흥시청에서도 논에서 채소, 과일, 특용작물을 재배하도록 권장하고 유도해왔다”라며 “지금까지 (이런 영농 형태에) 수십년 간 농업보조금을 지원하고 타 작물 경작을 알선하다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행정처분 하는 것은 직무 유기이자 부당행위”라고 주장했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농민들의 집회 종료 시점에 맞춰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해 대표자 5명과 면담했다. 임 시장은 이 자리에서 “이전 시정이 호조벌에서 더 이상 쌀만으로 소득을 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특화작물 재배를 허용했고, 이제 와 제가 재배를 틀어막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 지역에 전철역이 생긴다니까 갑자기 외지인 투기 세력이 몰려 곳곳이 별장으로 변하고 있다. 투기꾼들을 막지 않으면 호조벌 전체를 뺏기니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건데, 그러는 과정에서 설명과 진심을 전달해드리지 못해 놀라게 해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시흥시 측은 더불어 투기 세력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치는 반드시 올해 내에 시행하되 실제 영농을 하는 농민들의 경우 강제이행을 2024년까지 유예하고, 그 사이에 모두가 수용 가능한 방안을 찾을 테니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임 시장은 “여기 계시는 분들도 농사짓는 농민들이지만 논농사만 짓는 분들도 농민인 만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을 것”이라며 별개로 투기 세력에 대한 조치는 더 미루지 않을 것 역시 강조했다. 

시흥시의 제안을 농민들이 받아들여, 양측은 지속적 소통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기로 하고 처음보다는 밝은 분위기 속에 대면을 마쳤다. 김경숙 시흥시친환경농업협회 회장은 “여기서 농사지은 지 12년이 됐지만 호조벌 관련해서 농민들을 불러 놓고 한 번도 공청회나 안내를 한 적이 없었다. 불법이라는 단어가 농민들 가슴에 박히지 않게 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최승길 위원장은 “시에서 호조벌 관련 사업에 대해 농민 전체의 사전 동의를 얻고 소통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라며 “앞으로 농민들과 계획적으로 자주 만나 논의하고 이른 시기에 합의점을 찾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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