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연필⑦ 아세요? 주머니칼과 양철책받침

  • 입력 2022.04.03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오빠, 숙제해야 되는데 연필심이 부러져버렸어. 이거 좀 깎아주라.

-바보야, 넌 연필도 하나 못 깎냐? 이리 내봐. 그런데…뭘로 깎지? 마당에 나가서 낫 좀 갖고와봐. 아니면 부엌칼을 갖고 오든지.

연필깎이용 면도칼이 나온 건 한참 뒤의 일이었기 때문에, 196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시골 아이들은 김칫국물이 묻은 식칼이나 풀 베는 낫을 가지고 뚜덕뚜덕 연필을 깎았다. 물론 그때에도 주머니칼을 휴대하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주머니칼이 인기였어요. 날을 끄집어내서 연필을 깎고 나서는, 칼날을 딱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걸로 연필만 깎나요? 나뭇가지를 잘라서 윷도 가르고, 자치기용 자도 만들고, 고구마도 깎아먹고…그러다 보니 금세 날이 무뎌져버리지요. 무딘 날로 연필을 깎으려니 잘 안 깎이지요. 숫돌에 칼날을 가는 건 아무래도 어른들이 해줘야 하는데….”

1954년생 육병현 씨의 경험담이다. 끝이 무뎌진 주머니칼을 숫돌에 갈아주거나, 자식들의 연필을 손수 깎아주는 자상한 부모도 어쩌다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시골 아이들은 연필 깎는 일 정도는 제 알아서 했다. 주머니칼을 가진 아이는 칼 꽁무니의 구멍에다 노끈을 묶고, 다른 쪽 끝을 윗도리 단추 구멍에 매어서, 노끈을 사선으로 늘어뜨려 칼을 아랫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아직 칼을 장만하지 못 했던 내가 보기에, 그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놈들! 교실 바깥벽에다 연필심 문지른 놈 누구야! 빨리 나와서 자수하지 못해!

그 무렵에 초등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담임 선생님의 이런 역정을 꽤 자주 들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샤프펜슬이 나와서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만, 나무연필을 깎아 쓰던 당시엔 심을 뾰족하게 다듬는 일 또한 건너뛸 수 없는 작업이었다. 연필심을 공책 위에 수직으로 세우고 칼로 사각사각 갉아내기도 했으나, 성질 급한 사내 녀석들은 아무 데나 대고 심을 마구 문질러댔다. 그래서 책상귀퉁이며 교실 안팎의 벽면 군데군데에 시커먼 검댕 자국이 나 있기 일쑤였다.

연필만 질이 나빴던 게 아니고, 연필 글씨를 받쳐 안을 공책 또한 아주 질 나쁜 종이로 만들었다. 게다가 연필 꽁무니에 달린 지우개 역시 품질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정성들여 필기를 해놔도 공책 장은 언제나 지저분했다. 더구나 여간해서는 글씨가 또렷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심에다 침을 잔뜩 묻혀서 꼭꼭 눌러쓰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종이의 질이 워낙 안 좋다보니, 공책 장을 넘기면 필기한 쪽의 뒷면은 울퉁불퉁 글씨가 배겨나서 사용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책받침이었다.

-엄마, 나도 책받침 하나 만들어 줘. 공책에 글씨가 잘 안 써지고. 걸핏하면 찢어진단 말야.

-알었다. 돌아온 장날 땜쟁이 아저씨한테 가서 하나 만들어다 줄게.

책받침을 장만하러 왜 하필 땜장이한테 가겠다는 것일까? 6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일지라도 ‘책받침’ 하면 아마도 구구단이 적인 플라스틱 책받침부터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책받침의 원조는 양철 책받침이었다. 다시 육병현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책받침은 필수 학용품이었지요. 그걸 받치고 쓰지 않으면 공책 장의 한 쪽은 필기를 포기해야 돼요. 구구단이 인쇄된 PVC 재질의 책받침이 나온 건 한참 뒤의 일이고, 그 전엔 땜장이가 책받침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았어요. 만들었다기보다, 그냥 두꺼운 양철 판을 공책 장 크기만큼 잘라서 준 거예요. 고놈을 받치고 쓰면 글씨도 더 진하게 나오고, 뒷장에 글씨 자국이 배겨 나지도 않고….”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나 만화영화 캐릭터가 인쇄된 책받침을 갖고 다녔던 뒷 세대의 청소년들은, 부모나 조부모가 사용했던 책받침의 본래의 용도와 구실을 온전히 알고 있을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