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 우리 농협 마당의 나락, 어찌하랴?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 입력 2022.04.02 11:44
  • 수정 2022.04.03 18:56
  • 기자명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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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조경희 농민(전북 김제)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

봄이 왔다.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들어도 농사는 지어야 한다. 살면서 ‘해가 바뀌면 좋아지겠지?’ 하고 기대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코로나19도 종식되길 바라고, 세상 모든 것들이 더 좋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사는 곳 농민들의 큰 바람은 지난 한 해 동안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에 맞서며 생산한 나락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락을 보유하고 있는 농민뿐만 아니라 지역농협에 나락을 수매한 농민들도 나락값이 오르면 조금이라도 수매장려금을 받을 수 있으니 같은 기대를 한다. 그러나 그 기대는 다들 아는 바처럼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초 정부의 ‘역공매 최저가격입찰’이라는 엉터리 시장격리 이후 나락값은 더 떨어졌다. 조속한 시장격리로 나락가격 하락을 막아달라고 요구했건만 되레 정부는 나락값 하락을 더 부추기고 말았다. 지난해 내가 사는 지역의 모든 농협이 나락 40kg 1포대를 신동진벼 6만6,000원, 일반벼 6만4,000원에 매입했다.

내가 조합원으로 있는 지역농협도 같은 가격으로 약 8,500톤(40kg 21만5,000포)의 나락을 매입했다. 그 나락들은 현재 미곡처리장 내 저장시설 외에도 조합원들에게 공급할 어린 모를 키우기 위해 사용할 육묘장과 미곡처리장 마당에 그대로 쌓여있다.

매입가격보다 낮게 나락을 판매하면 적자가 발생하기에 나락가격 오르기를 바라며 판매를 못 하는 것인데 나락가격이 점점 더 떨어지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현재 지역에서 거래되는 나락가격은 신동진벼 기준 40kg 1포대당 6만원으로 떨어졌고,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나락을 보유하고 있던 농민들이 더이상 버틸 방법이 없어 손해를 보더라도 낮은 가격에 처분할 수밖에 없으니 생기는 일이다.

미곡처리장 담당 직원의 말에 의하면 매입한 가격에 그대로 팔아도 인건비와 매입자금에 대한 이자 등 고정비용으로 3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는데 현재 가격으로 매입한 나락을 팔게 되면 추가로 12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해 그 손실이 고스란히 농협과 조합원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락값이 더 떨어지면 적자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선은 언제일지 몰라도 나락값 상승을 기대하며 쌓여있는 나락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최대한 버텨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한다.

수확기보다 폭락한 쌀값에 농협 앞마당이며 육묘장 마당 곳곳에 나락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수확기보다 폭락한 쌀값에 농협RPC 앞마당이며 육묘장 마당 곳곳에 나락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수확기보다 폭락한 쌀값에 농협 앞마당이며 육묘장 마당 곳곳에 나락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수확기보다 폭락한 쌀값에 농협RPC 앞마당이며 육묘장 마당 곳곳에 나락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며칠 전 한 농민에게서 ‘나락값이 이렇게 떨어지고 있는데 대책이 무엇이냐?’는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드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지역의 농민회가 더 열심히 투쟁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 모르니 그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나락가격 하락의 책임이 있는 정부와 관료들, 정치인들은 과연 우리 농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가을 지역농민회에서 지역 농협 미곡처리장 앞에 나락을 적재하고 걸어놓은 현수막이 색이 바래고 처져있다. 혹시나 하면서 정부의 대책을 기대했던 농민들의 무너져버린 가슴만큼 처량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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