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청년 여성농민의 결혼 이야기

  • 입력 2022.04.03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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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여러분, 저 결혼해요!”

결혼 소식을 전하며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신랑은 뭐 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신혼집은 어디에 마련할거야?” 였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청년과 결혼한다고 하니, 신랑을 따라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예비신랑은 화천에 귀농한 청년농민이고, 우리는 주말(농한기) 부부를 하기로 했다. 신혼부부의 이런 결정에 어떤 이는 삼대가 덕을 쌓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같이 살아야 하는데 떨어져 살아서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예비신랑과 나는 올해로 각각 귀농 5년 차다. 그는 화천에 정착해서 농지를 마련하고 고추 하우스를 짓고 농가주택을 지었다. 나는 홍천으로 귀농하여 찰옥수수와 벼농사를 지으면서 농산물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린 터라 살림을 합치기도, 누구 하나 터전을 옮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름이면 고추 수확과 옥수수 수확으로 주말에도 얼굴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농번기에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살다가 농한기 부부를 하기로 했다.

직장 때문도 아니고, 일손이 부족한 농업분야에서 주말부부라니 뭔가 낯설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내 주변의 청년농민들이 간간이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봐왔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청년여성농업인협동조합 회원들 중에는 일 년에 얼굴을 몇 번 본다는 부부들도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농업을 선택하고 살아가다 만난 청년 부부들에게 장거리 부부생활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농업 특성상 정착지를 옮기기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거주지를 정한 다음 과제는 혼인신고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예비신랑이 동의한다면 굳이 혼인신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행여나 농업경영체를 결혼으로 합치게 되면 나는 공동경영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남편이 동의해야 되고 대표성이 없다. 농업 관련 지원사업도 그렇다. 각자 청년농부로 독립경영주인 경우에는 선진지 견학 프로그램 또는 지자체 농업 관련 지원사업들을 받을 수 있지만,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여 농민 부부가 되면 둘 중 한 명만 지원이 가능하거나, 그중 어느 정도만 지원된다. 부부가 되면서 혜택이 줄어드는 것보다 결혼한 여성이 되는 순간 농민대표가 아닌 농민대표의 배우자가 돼버릴까봐 지레 걱정이 좀 되었다.

왜냐면 농촌에서 한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님들이 왜 지자체에서 공지되는 지원사업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시는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대주가 가서 서명하거나 신청해야 하고, 보통은 이동수단이 남성들에게 있었던 터이니 늘 해오던 대로 혹은 편의상 가장들이 신청해 왔던 것이다.

다음 과제 또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이다. 조금은 급하게 잡은 결혼식 날짜를 두고 많은 지인들이 조심스레 ‘혼수’ 준비로 급하게 날을 잡은 것인지 물어왔다. 여자 나이 마흔을 코앞에 두고 결혼을 한다하니 다들 벌써 마음들이 급한 모양이지만 출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마 결혼을 해도, 부부가 각자 농사가 있으니 혼자 농사짓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밭농사, 논농사 그리고 농산물 판매장까지 운영해야 하는 나로서는 주말부부로서 결혼생활까지는 큰 무리가 없으나 출산은 얘기가 다르다. 나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아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준다는 그 돈들을 받으면 아이는 저절로 자라는가?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산부인과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출산 후 산후도우미와 농번기 돌봄선생님은 가능할까? 단체활동이나 교육에는 참가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출산은 가장 어려운 선택지가 돼버린다.

이런저런 고민이 있음에도 나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결혼을 앞두고 너무 감사한 일은 이제는 나도 나만 생각하면 되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더 복잡한 상황들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거다. 더 많이 배우고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농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더욱 건강하고 이로운 농촌생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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