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양파, 탄소, 식량자급률

  • 입력 2022.04.03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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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봄이 되면서 아랫녘에서 조생양파가 나오기 시작한 지 좀 되었다. 겨울 끝자락 무렵부터 저장양파에서 싹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햇양파를 기다리게 된다. 당연히 반가울 소식이다. 그렇지만 기다리시던 햇양파가 드디어 나왔습니다가 아니라 양파밭을 갈아엎는다는 기사가 햇양파 첫 소식이다. 저장양파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햇양파가 나오니 가격이 폭락하면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실행하지 않은 게지.

얼마 전부터 농업계에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아젠다가 제시되고 있다. 농업 생산과정에서 탄소 발생을 줄이자는 내용이다.

“정부 정책과제로 전 산업 분야에 걸쳐서 일정 기한까지 일정량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 농업 분야는 전체 탄소 발생량의 3% 정도지만 너희들도 동참해라.”

뭐 십시일반으로다가 좋은 뜻이라 인정된다. 그래서 일단 당국에서 내놓은 방법을 눈여겨보니, 대부분 기술적인 내용이 핵심이다. 큰 틀의 정책적인 내용은 찾기 힘들다.

경종농업에서 발생되는 탄소라는 게 뻔하지 않은가. 에너지 사용과 질소 사용이다. 에너지라면 단연 시설재배가 일등이다. 농기계가 그다음쯤 될 것이다. 그런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기술이야 농사꾼 입장에서 환영이나 그보다는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는 농사로도 농가소득이 보장되는 농업정책이 필요할 것인데 그런 큰 틀의 정책적 대안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겨울철에 불 때 가면서 하우스 농사를 안 하고 논농사 밭농사만 해도, 대규모로 축산을 하지 않고도 어지간히 소득이 보장되는 농업정책이 서 있다면 탄소절감이 저절로 되지 않겠냐는 말이다. 논밭에 축분퇴비, 화학비료 적절히 넣어 굳이 다수확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 만한 농업정책 말이다.

식량자급률은 바닥인데 과잉생산으로 양파를 갈아엎고 무·배추를 갈아엎는 현실이 대한민국 농업정책의 민낯이다. 쌀소비는 줄어들고 고기와 밀가루 소비가 팍팍 느는데 밀 생산기반과 사료작물 생산기반이 취약하니 당연히 자급률이 바닥일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그나마 돈이 되는 원예작물, 하우스작물로 몰린다. 그래서 해마다 이 작물 저 작물 돌아가면서 과잉과 갈아엎기의 무한반복. 부족하면 전광석화로 수입.

지역의 영농조합뿐만 아니라 최소단위 작목반에서도 작부계획이란 걸 한다. 국가 단위의 작부계획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개판인 거다.

그러면서 현장 농민들에겐 뜬금없는 소리인 탄소절감을 들이민다. 탄소절감이 어디 기술로 100% 해결될 문제인가. 자연 생태자원 수탈을 수단으로 소비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주범인 것을 아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모르겠다. 후자가 더 나쁜 놈이라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정리를 좀 해보자. 국가적 탄소저감 정책은 맞다. 불과 3% 비중이지만 농업계도 적극 동참해야 하는 것도 맞다. 그에 더해 부실한 농업정책을 바로 세우는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식량자급률을 올릴 현실적인 대책으로 밀과 콩, 옥수수 등 사료작물 생산비를 보전하는 정책이 필요하겠다. 국제 곡물가격과의 차이를 보존하는 게 그 정책의 근간일 것이다. WTO니 FTA니 때문에 어렵다는 핑계는 그만 대라.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국민들이 굶어 죽을 위험이 높아질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떤 핑계라도 대고 논리를 만들어 내서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투입하라. 농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우리나라 부의 총량에서 몇% 되지도 않을 것이다.

식량작물인 곡물들은 모두 노지(논 포함)작물이니 노지농사로도 소득이 보장되면 자연히 농업노동의 노예가 되고 시설비용, 에너지비용 많이 드는 시설농사가 줄어 탄소절감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고 원예작물 품목별로 돌아가면서 과잉생산으로 맨날 갈아엎고 시장격리하고 그럴 일이 확 줄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농업정책의 근간인 농지정책부터가 엉망이라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가만, 내가 누구를 상대로 소리 지르는지 갑자기 헷갈린다. 정치 권력? 관료 카르텔? 학계? 어쩌면 농업계도 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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