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

  • 입력 2022.03.27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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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로 당선인이 결정된 이후 벌써 3주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여전히 뉴스 가판대는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써 내린 기사들로만 가득하다.

<한국농정>의 사무실은 국방부 출입문으로부터 1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문재인정부 임기 내내 청와대 사랑채 앞을 향했던 경험을 버무려 되돌아봤을 때 당선인이 용산으로 가겠다며 꺼내든 ‘소통’이라는 명분은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현재 국방부 부지는 외부인이 보기에 청와대 못지않은 철옹성이다. 규모는 약 8만평이 채 되지 않는 현 청와대 부지의 몇 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선인은 50만평에 이르는 집무실 주변 공간 ‘공원화’를 전제로 내걸었지만, 이 같은 접근법을 쓰자면 현재의 본관을 포함한 청와대 부지 대부분을 개방하고 필요한 시설만 추가로 지어도 똑같이 해결될 문제다. 불필요한 국방부 해체·이전에 들 막대한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소통은 공간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당연한 상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한 사실은, 애초 집무실 이전지가 광화문이 아닌 용산으로 고려됐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국민의힘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사실이라 충격이 더 크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문재인정부 공약까지 언급하며 선거기간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용산 검토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시인했다. 5년 전 ‘광화문 시대’가 환영받았으되 결국 실현되지 않은 사실을 이용해 지키지 않을 공약을 의도적으로 세웠다 봐도 무리가 없다. 자꾸 떠오르는 무속 신앙 논란은 애써 잊은 채로도 말이다.

첫 단추가 이렇게 되면 당선인이 했던 다른 숱한 약속들도 전혀 믿을 수 없게 된다. 특히 농업 부문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선인이 헌법을 부정하고 경자유전의 원칙을 비판하던 게 불과 지난해 8월이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발 피해 탓에 안정적 식량공급이 주요 선결과제로 떠오른 지 한참 지난 시점에서 ‘농산물 비축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라 말하기도 했다.

농업계에서 망언 취급받던 이 말들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어느새 모두 수정돼 그럴듯한 농정공약 속으로 숨었다. 가뜩이나 CPTPP 가입과 원자재값 인상 등으로 농촌의 분위기가 더욱 무거운 가운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농업계 인사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거두게 하고 있다. 이 역시 기만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지나친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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