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업 전환’ 나선 스리랑카의 시행착오가 던지는 교훈

  • 입력 2022.03.20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기후위기에 맞서는 세계 각국의 무기 중 하나는 ‘유기농업 확대’다. 그러나 유기농업 확대 과정은 쉽지 않다. 남아시아 스리랑카에선 호기롭게 ‘농약 수입 금지’를 선언했다가 준비 부족으로 일보 후퇴해야 했다. 스리랑카의 사례는 방향이 옳아도 세밀한 계획 수립 및 현장 농민과의 소통 등이 수반되지 않으면 계획 실현은 어렵다는 교훈을 던진다.

지난해 4월,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농약 수입 금지’를 선언하며 스리랑카를 세계 최초의 ‘100% 유기농식품 생산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농약이 토양 황폐화, 수확량 감소와 생물다양성 손실 등의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유기농 전환 후 생산량이 감소한 농민에게 보상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4일, 스리랑카 정부는 7개월 전의 선언을 번복했다. 스리랑카 농무부는 화학비료·제초제 및 살충제의 수입 금지조치를 해제했다. 농약 수입 금지로 인해 식량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해 스리랑카 국립과학재단은 스리랑카에서 유기농 전환을 전면화할 시 기존 농업 대비 쌀 30~35%, 차 50%, 감자 30~50%, 옥수수 50%씩 수확량이 감소하리라 전망했다.

적어도 현재로선 스리랑카의 유기농 대전환 실험은 실패한 듯하다. 서방의 언론인·전문가 일각은 스리랑카의 ‘실패’에 대해 입방아를 찧어댄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분석만이 진실일까?

우선, 스리랑카의 농약 수입 금지조치엔 그럴 만한 명분은 있었다. 20세기 스리랑카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만큼 농약 사용량이 폭증한 나라였다. 스리랑카는 매년 농약 수입에 약 3억~4억달러(한화 약 3,723억~4,965억원)를 써왔으며, 선진국에선 사용이 금지된 농약이 마구잡이로 수입돼 해마다 약 2만명이 농약에 중독되고 그중 2,000여명이 사망했다.

화학비료·농약 사용량 증가가 꼭 다수확으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벼농가의 요소 비료 사용량은 2000년 약 19만톤에서 2004년 22만톤으로 늘어났는데, 요소 비료 1톤당 수확량은 2000년 14.82톤에서 2004년 11.94톤으로 떨어진 바 있다. 이는 화학농자재로 인한 장기간의 토양 혹사로 토양의 생산력이 감소된 것과도 연관되기에, 이 또한 유기농업 전환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스리랑카 정부가 이런 부작용을 극복하고자 ‘유기농업 전환’에 나선 데는 대다수 농민도 환영한다. 지난해 8월 민간 싱크탱크 ‘베리테 리서치’가 1,042명의 농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3분의 2가 정부의 유기농업 전환 목표에 동의했다.

그러나 찬성 측의 80%는 “유기농업 전환을 위해선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달았다. 또한 설문에 응한 농민의 20%만이 적절한 유기농사 방식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해당 농민들은 정부에 △유기질비료 사용에 대한 조언 및 지시 △점진적 (유기농업) 전환이 되도록 더 많은 시간 확보 등을 촉구했다.

한편 스리랑카 농민운동조직 ‘토지·농업 개혁을 위한 운동(MONLAR)’은 지난해 5월 라자팍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기농업 전환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히면서도 △현장 농민을 위한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의 부재 △지나치게 갑작스런 계획 발표 △농업 관련 정부부처와의 정책조정체계 미비(농무부부터 유기농업 정책 확대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정부의 녹색농업(유기농업) 정책엔 변화가 없다”며 “현대 기술을 도입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생물비료 사용을 촉진해 무독성 농산물 생산지로 국제적 인정을 받는 게 목표”라고 발언했다. 시행착오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스리랑카의 유기농업 확대정책이 향후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요시다 타로, <농업이 문명을 움직인다>(2011)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