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⑫] 아껴두고 먹는 과자 같은 시장, 고성

  • 입력 2022.03.20 18:00
  • 수정 2022.03.21 16:09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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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경남 고성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서쪽의 전남 순천과 비슷하다. 고성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통영 가는 길에 있으며 바다와 들에 면한 곳이라 물산이 풍부한 것까지 여수 옆 순천과 닮았다. 그래서 순천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이유와 비슷하게 고성을 사랑하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라도 가보는 곳이다. 특히나 경관이 빼어난 볼거리가 많은 것도 고성엘 자주 가는 이유가 된다. 순천은 KTX역이 있고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습지로 유명한 순천만, 태백산맥으로 더 많이 알려진 벌교, 일몰이 아름다운 와온해변 등이 있어 외지인들로 북적거리는 반면 고성은 아직 덜 번잡해서 좋다. 그래서 너무 많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릴까봐 깊숙하게 감추고 아껴두고 싶은 곳이다.

고성의 오일장은 고성시장에 면해 1일과 6일에 서는 장이다. 5개의 시장 건물동과 그 건물동들이 만들어내는 골목, 그리고 건물동을 둘러싼 외부길들이 만들어 내는 집합체다. 가동과 나동을 중심으로는 해산물을 파는 어물전이 대세라면 나머지 건물을 포함한 주변에서는 채소나 과일, 잡화, 기름집, 방앗간, 철물점 등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도라지를 까며 앉은 할머니도 계시고 쑥을 다듬으며 호객을 하는 할머니도 계시다. 아직은 날이 추워 쑥과 달래를 빼면 봄나물이 보이지 않고 겨울을 이겨내서 동초라 불리는 유채와 움파, 그리고 풋마늘 등이 대부분이다. 봄나물이 귀한 시간인 이 무렵은 바다에서 건져 올리고 뜯어내는 해초들이 아직은 괜찮은 때라 물미역, 생다시마, 물김, 파래, 모자반 … 등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붉은 꽃처럼 피어나는 멍게들이 진한 바다향을 담고 강렬한 힘으로 나를 잡아 세운다.

 

멍게살을 꺼내기 위해 손질하는 상인. 돌기를 세우고 몸집을 부풀리는 멍게로 어물전의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멍게살을 꺼내기 위해 손질하는 상인. 돌기를 세우고 몸집을 부풀리는 멍게로 어물전의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길에 자리 잡고 앉아 산더미 같은 멍게를 까시던 아저씨가 사진을 찍는 일행을 위해 멍게를 계속 주무르면서 요술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신다. 입을 벌리고 물을 뿜어내며 나른하게 늘어져 빛바랜 사진 같이 누워있던 멍게들이 아저씨의 손길에 모두 돌기를 세우고 일어나 복어처럼 몸을 부풀렸다. 색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붉은색에 빠져 한참을 더 들여다보다가 결국은 한 봉지 사고 만다. 꼭지를 잘라내고 칼을 넣어 뿌리까지 자르고 멍게살을 꺼내는 작업을 끝없이 하고 계셨는데 그걸 보는 내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볼거리가 너무 많으니 아쉽게도 그곳을 떠난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자란 나는 어물전 앞에만 서면 늘 설레고 기대에 차서 발길이 빨라진다. 상순엄마라는 간판도 있고 8번수산도 있고 간판 이름도 제각각 무지하게 재미진 곳이다. 생선을 말리는 모습이 통영이나 순천, 여수 등과는 다르게 선풍기를 매달아 일렬로 줄을 세워 정갈하게 느껴진다. 시장을 다 돌고 집으로 가기 전에 사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자리를 떠난다. 갈치상을 만났는데 ‘국산’이라며 통영배가 잡은 갈치로 맛있는데 비싸다고 적혀 있었다. 웃다가 사진 한 장 찍고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명태포 전문이라고 써 붙인 현수막 앞에 선다. 손님이 없는데도 정성스럽게 계속 포를 뜨고 계신 사장님께 말을 건넨다. 제수용으로 쓸 수 있게 명태포를 뜨는 중이라고 하신다. 명절 즈음에는 손목이 부어 일을 계속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통증도 심하다고 하신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격은 괜찮은지 여쭙고, 동태포라고 하지 않고 왜 명태포라고 하는지도 여쭙고 싶었지만 경건하게 보이는 작업에 방해가 될까 하여 자리를 뜬다. 근처에 말린 생선을 쪄서 파는 가게도 있다. 뭔가 가게 상호와 연락처를 알아두면 나중에 요긴하게 이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떠난다.

 

어물전의 한 상인이 제수용으로 쓰일 명태포를 만들고 있다.
어물전의 한 상인이 제수용으로 쓰일 명태포를 만들고 있다.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잠시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모여 앉아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잠시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모여 앉아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9시경 시장에 도착하였지만 돌다 보니 어느 사이 점심 무렵이 되었다. 여기저기 밥상을 앞에 놓고 손님이 없는 틈에 점심을 드시는 장면을 만난다. 숟가락 들고 거기 같이 앉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슬슬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다. 근처 상가에서 흑염소탕을 한 그릇 사서 먹고 점심을 해결한다. 해초 몇 가지를 사고 약속한 가게로 가서 반건조 생선 몇 마리를 사 들고 고성 오일장을 떠나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서둘러 장 봐온 재료들을 손봐서 생선을 굽고 물김국을 끓이고 해초들을 무쳐서 저녁을 차린다. 8년을 같이 일한 사진작가와 마주하고 밥을 먹으며 소주를 한 잔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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