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다시, 들길에서 땅에게 길을 묻는다

  • 입력 2022.03.20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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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경칩이 지나고 봄비가 내리는 오늘 아침에도 들길을 걷는다. 아침 들길은 어머니 손길처럼 따뜻하고 평화롭다. 필자는 도시민이면서 농촌지역으로 이사 와서 14년째 살고 있다. 집에서 시청까지는 승용차로 5분, 시외 쪽으로 5분만 가면 격오지 농촌이 있는, 그 경계에 사는 농촌사람이다. 지난 5년 동안도 들길, 산모퉁이길을 거닐며 나태주 시인의 ‘들길을 거닐며’라는 시를 읽기도 하고, 동네 농민들에게 기후위기나 농정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한다. 오늘도 길가의 들풀에게, 땅에게, 논밭에게 식량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대통령이 농어업을 직접 챙기겠습니다.” 이 문장은 2017년 4월 제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농정공약 맨 앞에 나온 것이다. 이보다 명료한 공약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대통령은 농정을 간접적으로도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인수위 활동이 없었던 탓도 있다. 그렇게 준비 없이 시작하다 보니 인사 문제부터 어긋났다. 쌀 생산조정제 등의 패착, 그린 뉴딜에서의 농업 소외를 더해 영농형 태양광 사업 갈등 유발, 스마트팜 혁신밸리 건설 등을 추진했다. 대통령의 농정철학 빈곤을 보여 준 사례다. 또한, 과잉유동성에 따른 도시 아파트 투기 여파가 농경지와 농촌 토지에까지 밀려와 정권실패에 핵심 요인을 제공했다. 이는 2020년 기준 곡물자급률 20.2%라는 정량지표의 심각성, 농업·농촌·농민의 공익적 가치를 농정에서 경시한 데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동네 마트에서도 길을 잃듯, 사방이 뻔히 보이는 들길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를 ‘문명사적 전환기’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말미암은 화석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기, 세상 모든 일이 디지털-스마트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혁명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위치는 그 ‘전환점’을 한참 지난 곳에 있다. 농업은 일반 산업과는 달리 국토환경과 국민생명을 지키는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역대 정부, 심지어 곡물자급률 100%를 훨씬 넘는 선진국들도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 농업부문은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파행적으로 취약하다. 기후위기, 국제분쟁 등 외부의 변수에 따라 농축산물 수급 불안정성 요인은 곳곳에 잠재해 있다. 국제곡물가격 상승, 농자재-농식품 이동 제한 등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그 부담을 그대로 국민경제에 전가된다.

들길을 걷다보면 두 갈래 길을 만날 때가 있다. 농기계 다니는 콘크리트 포장길과 비포장 흙모래 길이다. 요즘 들녘은 두 길이 다 필요하다. 농정도 유사한 상황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현재 우리 농정이 가야할 길을 탐색해 보기로 한다. 농축산물의 생산성을 높이면 곡물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하거나 농축산업 유래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할 수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저투입-저비용-저탄소-적정한 농가소득 지속-점진적 식량자급률 제고가 대안일 수 있다. 예컨대, 제20대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제안한 소위 ‘저탄소-친환경 경축순환농업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그것이다. 곡물자급률은 사람과 가축(사료)이 소비하는 식량으로 계산한다. 축산용 사료에서 수입 곡물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초지 축산이 안 되는 우리나라 형편에 육류 자급률은 72% 수준이나 되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화학비료 과다투입이나 품질이 낮은 사료를 섭취한 후의 축분 등에서 많이 나온다. 따라서 이들을 감축하거나 토양 등에 저장하거나 제거하는 ‘저탄소 경축순환형 친환경농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조기에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종농업에 비해 불균형적인 소규모 친환경축산의 육성이 필요하다. 각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저탄소 가족농 단위 경축순환형 친환경농업’ 육성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검토하면 좋겠다. 중앙정부는 이를 위한 선택형 공익 직불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곡물자급률 제고를 뒷받침할 적정규모의 농지 총량 보전은 필수요건이라 부연할 필요도 없다.

이제 새 정부의 인수위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 전 정부 농정에 대한 공과들을 평가할 것이다. 선거용으로 급히 만들어 제시한 농정공약도 재점검해 볼 것이다. 대통령은 인수위, 신임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은 후 농정 비전을 밝힐 것이다. 좋은 공약도 많았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목표치를 명시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유보해 두었던 것이 있다. 예컨대, 식량자급률과 그것을 위한 농지 총량 보존 목표치 달성 방안, 농업 관련 예산 확보 목표치와 조달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생각한다. 공약 간 정합성이 맞지 않는 세부내용도 바로잡을 것이다. 농정 인사에서는 ‘3농’ 현장의 목소리를 두루 잘 통합할 수 있는 비정치인 출신 전문가가 등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설치 의도는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만든 직속기구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자문기구 정도로 구속력이 약한 ‘위원회’의 운영방식도 혁신해야 한다. 농식품부에는 기후위기와 농촌소멸 대응 등 문명사적 전환기의 3농 문제를 제대로 대응할 ‘친환경농촌국’ 같은 성격의 전담 직제가 마련되면 좋겠다. 대통령은 농정 예산, 법제화 등에 힘을 실어 주면 된다. 이제 농민들은 도·농 간 융합 그리고 3농과 정부의 협치 리더십을 궁금해하고 있다. 도·농 간 융합 그리고 3농과 정부 간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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