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임신이 경사가 되기 위해선

  • 입력 2022.03.20 18:00
  • 기자명 박효정(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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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경남 거창)
박효정(경남 거창)

요새 학교에서 배부하여 아이들 등교 전에 검사하는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보면 임신 테스트기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을 때가 자연히 떠오른다. 뱃속에 새사람을 기다리던 차에 임신을 확인한 순간 엄마가 된다는 기쁨만큼이나 크게 느꼈던 것은 걱정과 불안이었다. 만일 농번기에 출산이 겹치면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심할뿐더러 그야말로 산후조리 기간이 민폐로 느껴지고 과연 충분한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추수할 때쯤 몸을 풀겠다 싶으면 당장 씨앗 넣는 일을 멈추고 줄이는 등 농사 계획을 수정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임신한 여성농민의 근심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모른다.

통상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확인하면 병원에 가서 자궁 ‘내’에 착상을 잘 했는지, 자궁 내 피고임은 없는지, 난소는 잘 있는지, 빈혈이나 체내에 부족한 영양은 없는지, 자궁 경부 등을 검사하게 된다. 그렇게 임신 10달간 병원을 종종 다니게 되는데, 시골에는 산후조리원은 고사하고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조차 없어 인근 도시로 원정 출산과 산후조리를 하러 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 지역에는 산부인과가 한 곳 있다. 그런데도 읍내에 병원으로 갈지, 고속도로를 타고 근교 도시 병원으로 갈지 고민을 한다. 보통 경제적·시간적 이유로 가까운 병원으로 가지만, 지역 사람 중에 많은 엄마는 할 수만 있다면 인근 도시 산부인과로 가라고 추천한다. 임신 중에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때는 지역 병원에서 해결이 안 되어 어차피 도시로 나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출생 후 산후조리원과 자연스럽게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을 잘 풀어야 한다.’ 얼마나 많이 듣는 말인가. 산후조리의 중요성을 누구나 알지만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에 삼칠일을, 백일 간을 산모의 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뒷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다자녀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위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멀리 나가지 않았다(못했다). 첫째 둘째 때는 농번기에 시어머니와 배우자의 조력으로, 셋째 때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 수 있는 도우미 제도를 신청했다. 시골에서 매우 유용한 제도이지만 한 달 전에 예약해도 출산 3주 후에야 배정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또한 도우미 선생님이 버스를 타고 읍내에서 마을로 오시겠다고 마음을 내어주셔서 가능하다고 했다. 최대 3주를 도움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뒤에 예약한 사람들이 많아 2주간만 조리를 받았다.

산업화와 출산 문화를 다룬 <농부와 산과의사>란 미셸 오당의 책에서도 ‘후산’을 강조한다. 어머니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시기로 후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출혈이 생긴다고 했다. 출산한 여성의 몸은 틀어지고 늘어난 뼈마디와 골반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자궁이 수축하면서 오로가 나와 임신 전으로 돌아가는데 약 100일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 생명을 품고 키워 내보내는 과정의 상처를 돌보아 치유하는 일을 ‘엄마니까’ 홀로 감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산후조리는 선택이 아니라 출산 후 누구나 겪는 과정으로 지켜야 할 기본권이지만, 경제적 지위와 도농 격차에 따라 집에서 멀리 있는 값비싼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 산모가 온몸으로 그 책임을 떠안게 되니 임신 중에도 불안한 것이다. 이렇듯 여성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는 깜깜하면서 출산장려금을 최대 얼마까지 준다고 하며 지자체 간에 경쟁적인 가격 올리기로 당장에 인구 증가에만 급급한 행정 시스템은 실로 자본주의의 막장을 보는 듯하다.

시골에서 산후조리원은 수지타산이 안 맞는 사업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 지역에 공공 산후조리원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일부 지역에도 조금씩 공공 산후조리원이 생겨 큰 호응을 받고 있지만, 공공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터라 여전히 대부분의 지역은 산후조리 사각지대로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으레 임신을 하면 주위에서 경사 났다 하지만, 시골에서 임신한다는 것은 쉽게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아이를 품고 낳는 과정을 오롯이 겪는 여성들의 실질적인 경험이 배제된 인구 정책으로만 접근할 때에는 임신이 결코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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