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도라지는 죄가 없다

  • 입력 2022.03.13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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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마당 한쪽에 심어놓았던 수선화가 싹을 내밀기 시작한 것으로 봐서 땅 속에서는 봄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서둘러서 대파 파종을 하고 밭에 퇴비를 뿌렸다. 밭 주변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정리까지 했다. 밭에 뿌리던 퇴비를 남겨서 텃밭에 쓰려고 집으로 끌고 왔다. 퇴비를 뿌려서 손봐둘 자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봄에 심어야 할 푸성귀가 좀 많은가.

집 뒤편의 20여 평쯤 되는 텃밭이 어느 순간부터 비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심어둔 도라지가 거슬렸다. 시어머니는 흡연을 하는 아들이 걱정되어 기관지에 좋다는 약을 키웠던 것 같다. 95세인 시어머니는 양궁선수인 딸네 살림을 해주시느라 20년째 광주에서 타지 생활이다.

몇 년 전까지는 도라지를 캐서 나물도 해 먹고 물로 끓여 먹었다. 장마철에 피는 도라지꽃을 어렵게 말려서 꽃차도 만들었다. 보라색 꽃에서 우러나는 모양새는 눈으로 마시는 차의 진수를 보여주곤 했다. 5년 전쯤부터는 그런 과정이 시들해졌다.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도라지를 캐려면 호미로는 어림도 없어서 쇠스랑으로 파내야 했다. 게다가 캐낸 도라지를 씻어서 껍질을 벗겨내는 수고가 너무 번거로웠다. 내가 활용하지 않은 도라지는 텃밭에서 영역을 넓혀가면서 신경을 긁었다.

도라지를 싹 다 캐내고 나면 자리가 제법 넓어질 것 같아서 결단을 내렸다. 손바닥에 침을 퇘퇫! 뱉어서 쇠스랑 자루를 강단지게 잡고 힘을 모았다. 중간에 쇠스랑 자루가 끊어져서 다시 사와서까지 애써 도라지를 다 캐냈다. 도라지를 캐고 나면 상추나 쑥갓을 키울 자리가 아주 넓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공간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이 작은 터를 만드느라 숨차게 쇠스랑으로 땅을 팠나 싶었다. 뭐지? 중얼거리면서 텃밭을 쭈-욱 훑어보았다.

감나무 2그루와 비파나무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기세등등한 텃밭의 주인 모습으로 자리를 넓히고 있다. 욕심이 담을 넘어 옆집으로까지 가지를 내밀고 있고. 부추도 고정적인 자리를 독점했고. 1년 내내 활용해야 하는 대파도 역시 한자리 차지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복숭아를 맘껏 먹게 하려고 밭두둑에도 심고 또 집 텃밭에도 심어놨었다. 복숭아나무가 도라지를 캐낸 자리보다 몇 배는 더 넓게 확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어머니가 심어놓은 도라지에 오랜 시간 눈총을 쏴댔다. 시어머니의 흔적은 크게 보이고 내가 필요한 자리가 좁게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각자의 의도, 시어머니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내가 아들을 위한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을까?

3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면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본 적 없이 치이기만 하다 보니 심사가 배배 꼬여있는 사람이 보인다. 생활의 작은 단면마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한쪽 귀퉁이서 째려보는 사시를 하고 있다.

농촌과 농업이 도시와 기업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현실인식이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와전되지 않았나. 나와 목적성이 다르면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배타심이 선한 의도까지 뿌리째 캐내고 싶게 만들었는지도.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해서 수십 년 가꿔온 관계마저 의심하는 요즘의 내 사고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 안의 들보는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티눈을 확대 해석하는 편협함을 확인하면서 사고에도 회복탄력성이란 게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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