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마 덮친 경북 울진 농촌마을 … 고령 농민들 피해막심

북면 신화2리·검성리·울진국민체육센터 이재민 대피소 현장
화재로 터전 잃고 길거리·비닐하우스·건조실에서 하룻밤 지새
수천만원 달하는 농기계부터 애써 기른 농작물까지 ‘잿더미’로
표고버섯 농민 “불이 사방서 오는데 멍하니 지켜보는 수밖에”

  • 입력 2022.03.08 16:01
  • 수정 2022.03.08 20:53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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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지난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의 주택과 창고들이 동해안 산불로 인해 완전히 전소된 채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의 주택과 창고들이 동해안 산불로 인해 완전히 전소된 채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낮 12시쯤 찾은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동회관 일대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현장에는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강아지 두 마리만 돌아다녔다. 화재가 발생한 지 나흘째를 맞았지만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매케한 악취와 퇴비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집 앞 텃밭마다 놓인 퇴비 50여 포대 가운데, 일부 포대는 뜨거운 열기에 군데군데 녹아 있었다.

집집마다 슬레이트 지붕이 새까맣게 그을린 채 주저앉아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낙석방지를 위해 쌓아올린 벽돌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박살났다. 집을 지탱하던 2cm 정도 두께의 철근과 철판들도 뜨거운 열기에 휘어진 채 나뒹굴었다. 깨진 항아리에서는 고추장이 흘러나와 검붉게 그을려있었다.

“여기가 아버지 댁인데, 너무 걱정돼서 회사 점심시간에 들린 거예요. 이 집뿐만 아니라 마을이 전소됐죠. 대통령이 왔다 가서 뭐 해준다 했다는데 말뿐인 것 같습니다. 복구 비용 1,600만원 지원해준다 했다는 거 같은데 그걸로 복구되겠습니까.”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줄곧 살아온 아버지의 터전이 화마로 무너진 광경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들 장진규(45)씨는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산불이 발생한 지난 4일 그의 아버지는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 격리 중이었다. 삽시간에 퍼지는 산불에도 마땅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차를 타고 몸만 빠져나와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장씨는 아버지가 당뇨와 고혈압을 앓는 데다 코로나까지 확진된 상태였지만, 보건소에서조차 연락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직접 보건소에 연락을 했지만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받을 수 있다는 곳은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집에서 20km 떨어진 비어있는 외갓집에서 격리 중이다.

간신히 몸을 뉠 공간은 구했지만, 생계수단은 모두 잃어 막막하다. 그의 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다. 이번 화재로 고추와 감자를 심어 놓은 비닐하우스와 논·밭이 불타고 벌통 100개도 못쓰게 됐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트랙터와 경운기, 이앙기 등 농기계도 모두 타버렸다. 그는 “원래 아버지가 농사지어 쌀도 주셨는데 앞으론 쌀도 사 먹어야죠”라며 쓴웃음을 보였다.

지난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검성리 검성리경로당 부근 비닐하우스 철근 뼈대 사이로 동해안 산불로 완전히 무너져내린 주택이 보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신화2리 동회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검성리로 가는 도로변에는 KT 통신 복구를 위한 통신업체 차량 2대가 보였다. ‘검성리’ 진입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지나자 KT 통신사를 쓰는 동료 기자의 휴대전화가 먹통이 됐다. 산불로 통신시설이 마비된 것이다.

삽시간에 넘어온 불길에 휴대전화도 챙기지 못했다는 주진갑(81세)씨는 “마을 이장이 옛날 분교 쪽으로 가라 해서 갔더니 그 마을도 불타고 있어서 길을 돌려 삼척시 원덕읍 부근 다리로 피신했다”며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날 밤 찾은 집은 잿더미로 변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그는 집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청했다. 이튿날은 곡물과 고추를 말리는 건조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전날(6일)에서야 울진국민체육센터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고 센터에서 잤다고 했다. 

그는 “비닐하우스에 상추랑 고추를 심어놨는데 불길 지나고 와보니 집은 다 무너져도 얘네는 다 살아있더라”라며 “살아있는 건 살려야 하니 오늘 물 주러 왔다”고 했다. 그의 발 옆에는 근처 냇가에서 물을 길어 온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이 마을 일대는 화재로 수도와 전기가 끊긴 상태였다.

주씨 집과 도로를 사이에 둔 빨간 시멘트 집 앞마당에는 김진오(70)씨가 약초를 널고 있었다. 김씨의 집은 전소 위기는 가까스로 모면했다. 뒷산 빼곡한 나무도 모두 탔지만 김씨 집은 불길이 피해간 것이다. 그러나 표고나무 4,500본을 생산하는 모두 2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두 동과 경운기, 건조기, 저온저장고, 약초 2500근, 나락 47포 등을 보관하던 창고는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 7일 경북 울진군 검성리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김진오(70)씨가 화마가 덮친 자신의 창고를 보여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경북 울진군 검성리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김진오(70)씨가 화마가 덮친 자신의 창고를 보여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7일 경북 울진군 검성리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김진오(70)씨가 화마가 덮친 자신의 창고를 보여주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씨를 따라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불길에 그을려 빠짝 마른 표고버섯이 앙상한 모습으로 나무에 붙어 있었다. 그는 “매일 20kg 이상씩 수확하고 있었는데, 전부 다 타버려 더 탈것도 없다”며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바로 옆 창고에서는 되살아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평생 일궈온 비닐하우스와 창고가 화마에 휩싸이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는 “소방차나 헬기나 전부 원자력발전소 불 끄러 가고 여기는 하나도 안 왔다”며 “불이 사방에서 오는데 재주가 있나 멍하니 보고 있는 수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김춘애(85)씨도 “우리집은 소방차 한 대만 와도 괜찮았을 텐데 다 원자력발전소로 가더라”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씨가 사흘째 머문 울진국민체육센터 이재민 임시 대피소에는 산불이 발생하자 급히 대피한 울진군 주민 180여명이 재난구호텐트 95개에서 생활하고 있다.

경북 울진군 산불 나흘째인 지난 7일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이재민들이 머무는 텐트 95동이 설치돼 있다. 한승호 기자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왼쪽 손과 다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전종두(57·울진군 북면 고목1리)씨는 대피소 한쪽에서 휠체어에 앉아 활동지원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씨는 지난 4일 오후 동네 뒷산에 불이 나자 활동지원사 도움을 받아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사촌동생이 보내줬다는 사진 속 전씨 집은 지붕이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전씨는 “2019년 발생한 태풍으로 마을이 복구가 덜 된 상태에서 불까지 났다”며 “이건 재앙이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전씨는 집뿐만 아니라 농사 기반까지 잃었다며 걱정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몸도 안 좋고 해서 도라지와 옥수수 등을 재배하던 밭 960평을 농사짓겠다는 친구에게 빌려줬는데 농기계와 비료, 종자씨도 다 타서 울고 싶은 심경”이라고 말했다.

텐트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장옥선(94)씨는 당시(4일) 다급히 차에 태운 이웃들에 이끌려 대피소로 향했다. 장씨는 “멀리서 연기는 보이는데 설마 우리 마을까지 불이 오겠나 싶은 마음이었다”며 “차에 타라 해서 타긴 했지만 잠깐 피해있다가 돌아갈 거라 생각해 아무것도 안 챙겨 나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웃으로부터 집이 잿더미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센터를 나섰다고 한다. 그녀는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서 직접 보러 갔다”며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이 모두 잿더미가 됐더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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