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이 대표가 된다는 것

  • 입력 2022.03.06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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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귀농 5년차, 나는 2022년 이번 해에 홍천군 영농 4-H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전에 다른 단체의 강원지부장을 맡기도 했었고, 워낙 이곳 저곳 단체 활동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다. 그건 내가 이 단체의 61대 첫 여성회장이기 때문이다.

첫 여성회장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는 살짝 부담스럽지만 기분 좋게 설레는 책임감이기도 하다. 그동안 다른 단체에서 지부장 역할을 해야 해서 4-H 활동을 아주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회원들이 회장으로 지지해준 이유는 여성회원을 확대하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 단체에 대한 약간의 부정적인 시선(대부분 알고 있는)을 바꿔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 포부를 가지고 사업계획을 세우기 위해 임원들과 수련회를 준비하던 중, 나는 첫 번째 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수련회를 1박 2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정하고 추진하던 중, 간부 중에 아기 엄마가 있어서 참석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정을 듣고, 프로그램과 장소 변경을 하면 어떨지 다른 참가자들과 수련회를 후원해 주시는 농업기술센터와 상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들 나의 제안을 낯설어했다. 그동안 이런 적이 없었으니 굳이 그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아이 엄마가 낮 시간 만큼이라도 참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변경했고, 그 친구는 나에게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 친구는 결혼 전에 무척 활발하게 4-H 활동을 했지만, 결혼 후 육아를 하게 되면서 외부활동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면서 다시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이번처럼 상황이 맞지 않으면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이런 시도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육아 중인 회원의 사정을 함께 고민하고 배려해준 우리 회원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과연 여성회원의 확대를 위해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출생률(출산율이 아니라)이 낮다고 하고,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하고, 농촌소멸을 얘기하면서, 정작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상황이나 조건을 만들 수 있는 노력을 얼마나 했을까.

육아 중인 청년 여성이 연고지가 없는 농촌에서 교육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다. 배우자에게 맡기고 야간에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나마도 야간교육이 있어야 가능하다. 혹은 타지에 계신 부모님 혹은 지인에게 돌봄을 부탁하거나 없는 살림에 돈을 들여 돌봄 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

옆마을 사는 내 친구 승미는 여든넷의 아버지를 모시고 여섯 살, 아홉 살인 딸 둘을 키우며 사는 주말부부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귀촌을 했고, 아버지의 농사를 돕다가 그대로 맡아 하며 농사를 짓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상을 차리고 아버지와 아이들을 챙겨서 각각 경로당과 유치원,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밭에 나간다. 오후 서너시가 되면 아버지와 아이들을 챙겨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그 사이 7~8월 뙤약볕에 10시부터 3시까지 점심도 거르고 밭일을 해야만 한다. 청년이고, 여성이며 귀농 승계농이지만 도시에서 일하는 남편의 4대보험 덕에 청년창업농지원사업도 받지 못한다. 그나마도 누구 하나 아픈 날이면 의탁할 곳이 없어 아버님과 아이 모두를 태우고 한 시간씩 거리의 병원 투어를 해야 한다.

결혼 14년차, 승미는 올해 내가 회장이 되면서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사회활동에 나섰다. 지역의 청년들이 함께 소통하고 돕는다는 것이 너무 꿈 같은 일이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같은 일을 하며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하고 토론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남성회원들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은 모임을 준비하면 고기, 술이 끝이었는데, 돌봄을 비롯해서 다른 먹거리와 프로그램 등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굳이 여성회원들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배려를 할 수 있다면 활동에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주는 그 마음들이 너무 고마웠다.

참고로 어느 단체는 행사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아이를 동반하고 참석하는 참가자를 파악하고 아이돌봄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한다. 마치 목이 마를 참가자를 위해서 행사에서 마실 물을 준비하듯 육아를 해야 하는 참가자를 배려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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