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기본법 제정 위해 삼천리 방방골골 농민들 찾아다닐 것”

인터뷰 l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 입력 2022.03.04 10:08
  • 수정 2022.03.04 17:43
  • 기자명 김태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김태형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1월 25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으로 당선된 하원오(65) 의장은 2000년 부산시농민회 부회장으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2007년 부산시농민회 회장을 거쳐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전농 부산경남연맹 의장으로 활동했다. 2016년부터는 경남진보연합 상임대표로서 중형조선소 정상화,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운동에 앞장섰다. 지난해에는 경남 도내 시민·노동·농민·여성단체, 진보정당 등 20개 단체로 구성된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경남연대(경남연대)’에서 상임대표를 맡아 해고·폐업 철회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20여년 간 농민·노동운동 현장을 두루 누빈 하원오 신임 의장을 지난 2일 전농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두 차례 농지 빼앗기며 농민운동 결의

“저는 원래 부산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도부터 부산시가 부산 낙동강 하구 삼각지농토에서 강변 공원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농토를 빼앗기게 됐습니다. 저처럼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과 함께 투쟁에 나선 게 농민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원오 의장은 부산시농민회를 조직해 부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하 의장에 따르면 2000년도에 부산시가 추진한 강변 공원화 사업이 발단이다. 당시 부산시가 하천 농지 약 150만평 가운데 약 70만평을 공원화할 계획을 세우고 매년 농지를 수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보상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는 부산시에 꼭 필요한 부분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농사를 짓게 해달라 요구했다”며 “결국 하우스를 전부 철거하고 남는 땅 약 30만평에 농민들이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정비 사업이 하 의장을 다시 투쟁 현장으로 불러냈다. 그는 “당시에는 밀양에서 7,000여평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명박정부가 4대강 사업을 위해 밀양 4개 읍·면의 부지를 수용하려 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다 쫓겨났다”고 했다.

하 의장은 당시 부산시 사상구를 지역구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후보 등록을 마치고 맨 처음 방문한 곳이 부산시농민회”라면서 “그 때 4대강 사업 문제에 관한 입장을 물었더니 ‘지금은 힘이 없다’고 말했는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챙겨보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당시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농민·노동자는 뗄 수 없는 운명”

“군부독재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제성장을 위해 꾸준하게 펼쳐온 정책이 저임금정책이었고,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저곡가정책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돈을 조금 주는 대신, 먹고 살 수 있게는 해줘야 일을 할테니 식량을 싸게 살 수 있게 해줬던 거죠. 결국 이렇게 한국 경제가 성장해온 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가 가장 희생한 겁니다.”

하원오 의장은 최근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조 조합원의 파업 현장에서 전농을 대표해 연대 발언에 나섰다. 그가 노동자와 연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같은 입장과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한 편에 서지 않는다면 누가 한 편에 서겠습니까”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 의장은 2016년 경남진보연합 상임대표를 맡으면서 노동자와 빈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농민과 노동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낀 그는 이후 노동자생존권보장 조선산업살리기 경남대책위와 대우조선해양 매각 반대 경남대책위에서 상임대표로 활동하며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현 케이조선), 성동조선해양 등 조선업계 노동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가 함께해야만 모두가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 국가 역할 확대해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은 일상이 됐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식량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난 2020년 6월 24일 시작한 장마는 54일 동안이나 지속했다. 2020년 기준 국내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0.2%, 식량자급률은 45.8%로 식량 위기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이에 더해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등 식량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하 의장은 “국가가 농업과 먹거리를 근본적으로 책임지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대안은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를 통해 주요농산물을 국가가 수매하고 급식 등 공공 분야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는 “한 해 한 해 그해의 생산량에 따라 미봉책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로 농산물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농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을 꼽았다. 최근 문재인정부가 가입을 검토하고 있는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관해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기도 했다. CPTPP는 일본과 캐나다, 호주, 브루나이, 싱가포르, 멕시코, 베트남, 뉴질랜드,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11개 국가가 2018년 12월 출범시킨 협의체로 회원국간 농식품 부문 평균 관세 철폐율이 96.3%에 달할 정도로 개방수준이 높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열고, 올해 4월 중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해 농어민들의 반발을 샀다.

하 의장은 “이제는 개방만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을 어떻게 보호하고 육성해나갈 것인지 국가가 책임지고 전망을 세워야 한다”며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을 폐기하고 국가가 농업을 책임지는 ‘국가책임농정’을 실현해야만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농민기본법 제정 위해 힘쓸 것”

하 의장은 인터뷰 내내 ‘농민기본법’을 강조했다. 지난 1월 1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5만명 동의를 받아 국회 심사를 받게 된 농민기본법은 △식량자급률 목표 100%로 설정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농민 참여권리가 보장되는 농산물 가격결정위원회 구성 △국가 책임하의 농지확보 △농어촌 보전 및 농어촌 주민 권리 보장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는 “지금은 국가 농정이 무너진 상태”라면서 “직불금이나 농민수당 등 여러 제도가 있지만, 지역마다 편차가 있고 농민들이 전체적으로 수용하기엔 주먹구구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단 농민기본법부터 빠르게 제정한 뒤 이를 토대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기본법에 관한 청원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해당 청원의 소관위원회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청원이 회부된 날부터 90일 이내에 심사를 마쳐야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60일 이내로 연장할 수 있고, 장기간 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추가 연장도 가능하다. 사실상 심사를 임기 내에서 무기한 연장할 수 있다. 올 한 해 전농의 핵심과제로 농민기본법 제정을 꼽은 하 의장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농민기본법이 제정되는 그 날까지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농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됐으면”

20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이 날 하 의장은 문재인정부의 지난 농정을 ‘적폐 농정’으로 평가했다. 그는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농민 배제, 쌀값 하락, CPTPP 가입 추진 등 어느 정부보다 농업분야에서 굵직한 퇴보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그동안 어떤 정부도 농업과 농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지 않아 큰 기대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농업에 대해 올바른 잣대를 가지고 농업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농민운동에 뛰어든 초심을 잃지 않고 ‘농민가’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삼천리 방방골골 흩어져있는 농민들을 열심히 찾아가겠다는 하 의장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농민들이 살맛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그제야 웃어 보였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