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배추농가, 농협 계약재배 약정서 변경에 ‘철렁’

‘재해 시 계약해지’ 시사하는 조항 신설 … 농민 분개

농협 측 “기존 약정서 내용과 달라진 것 없어” 해명

  • 입력 2022.02.2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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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남 해남의 A농협이 배추 계약재배 약정서에 ‘자연재해 발생 시 계약해지’를 시사하는 조항을 만들어 농민들의 소요를 야기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기존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게 농협 측의 해명이다.

농협 계약재배 포전이 자연재해를 입으면 보통 피해물량을 제하고 계약을 이행하지만, 피해가 극심한 일부의 경우엔 농가가 계약 선급금을 반환해야 한다. 계약재배 약정서의 ‘기 지급대금 반환’ 관련 규정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까진 A농협의 약정서 역시 타 농협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논란은 A농협이 올해 약정서를 개정하면서 불거졌다. A농협은 ‘기 지급대금 반환’ 조건과 별개로 ‘계약의 해지’ 조건에 ‘기상재해 및 자연재해로 수매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포전’이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자칫 농협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재해 포전에의 농협 책임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는 조항이다.

A농협의 2022년산 봄배추 계약재배 농가약정서. 제12조 ‘계약의 해지’ 조건에 자연재해 관련 조항을 명시했다. 농민 제공
A농협의 2022년산 봄배추 계약재배 농가약정서. 제12조 ‘계약의 해지’ 조건에 자연재해 관련 조항을 명시했다. 농민 제공

설상가상으로 농민들의 문제제기에 A농협 간부직원들은 “농협중앙회(경제지주)에서 내린 지침대로 따른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농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건 당연지사였다.

간부직원들의 답변은 거짓이었다. 농협경제지주 업무편람이 제시하는 표준약정서상 ‘계약의 해지’ 조건엔 자연재해 관련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일반적인 약정서와 마찬가지로 ‘기 지급대금 반환’ 조항을 통해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해놨을 뿐이다. ‘계약의 해지’ 조건에 자연재해를 추가한 건 A농협의 독자적인 결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A농협이 재해 포전을 ‘쳐내려’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뿐더러, A농협 실무자도, 농협경제지주 담당자도 “문구와 상관없이 기존의 약정서 내용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확언했다.

즉, 이번 소요사태는 △A농협이 ‘기 지급대금 반환’ 항목에 명시된 자연재해 관련 내용을 굳이 ‘계약의 해지’라는 자극적 제목의 항목에 중복 신설한 것 △A농협 간부직원들이 농민들의 문제제기에 건성 답변을 한 것 두 가지 요인이 초래한 해프닝이다. 농협의 섬세하지 못한 일처리와 농협-농민 간 소통장애가 드러난 사건이다.

다만 단기간에 이처럼 작지 않은 소요사태가 발생한 데는 재해 문제에 대한 농민들의 평소 불편한 시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기 지급대금 반환’ 항목에 명시된 선급금 반환 조건부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농민들의 시각이다.

주종룡 해남군농민회 화원면지회장은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시기를 정하고 약을 치던 시절엔 농가 책임이 있겠지만 지금은 심는 날짜나 종자, 농약도 농협이 관리하고 농민은 물만 주지 않나. 뿌리혹병·석회결핍 등 물이 원인인 경우를 제외하면 민간 상인들도 재해 손실을 자기가 떠안는데, 농협이 재해 농가더러 선급금을 반환하라 하는 건 그 자체가 부당한 갑질”이라 쓴소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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