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적여’, 진실 혹은 거짓?

  • 입력 2022.02.27 18:00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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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경남 남해)

해는 부모와 같아서 맨날 봐도 좋고, 비는 형제와 같아 사흘만 봐도 지겹니라, 했던가요? 예전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께서 무심결에 던진 말씀입니다. 그 비유가 참 적절하게 느껴져서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 놓았다가 심심찮게 풀어 먹고는 합니다. 겨울가뭄이 하도 심해 지겨워도 좋으니 비가 흠뻑 내렸으면 하고 바람을 가져보는 요즘입니다. 또 있습니다. 아홉 번째 어머니라도 그 마음 씀이 형제보다 낫다고 어른들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언론에 드나드는 계부 계모들의 반인륜적 사례는 극히 일부이고, 실은 그 자리에 맞는 어른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는 말씀인 게지요. 암요, 부성과 모성이 구체적인 돌봄의 경험을 통해 강화되는 것이지, 친과 양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일 것입니다. 어른들은 어찌 이리 삶에 관한 적절한 비유를 잘도 하실까요? 배우고 또 배웁니다.

어른들이 전하는 인간사에 관한 대부분의 비유가 옳다는 것을, 살다 보면 더더욱 깊이를 깨닫게 되어 두고두고 새기지만, 딱 한 분야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바로 ‘남녀’에 관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암탉이 울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이제 어디에도 인용되지 않을 만큼 고답적인 얘기가 되어 버렸고, 그토록 비장미를 자랑하던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을 안, 또는 못 들어본 지도 꽤 되었습니다. 전 세계 1만5천여 개의 여성에 관한 속담을 분석해보니, 여성을 존엄한 한 인간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하나같이 남성에게 효용 가치나 여성의 활동 범위에 대한 제한, 남성 욕망의 정당화 등이 그 주된 내용이라고 하지요. 세상이 하도 넓어서 많은 차이가 있을 법한데도, 가부장제를 비껴간 사회는 없으니 그렇겠지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뒤늦게 남녀관계도 꽤 요동치며 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모순이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무심결에 했던 말과 행동이 범죄가 되기도 하고,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크나큰 오해를 사기 마련이라 더없이 말조심 행동조심을 해야되는 시절인 것이지요. 그러니 여성에 관한 말들도 조심스레 할 수밖에요.

이 와중에도 종종 쓰여서 참 듣기 거북한 말이 하나 있었으니, ‘여적여’ 입니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랍니다. 심심찮게들 들어보셨겠지요? 왜 여성의 적이 여성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굳이 이해해 볼 요량이면, 오랜 가부장제 사회의 폐단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일부일처제가 확립되기 전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내는 안정된 지위를 갖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여성들의 경쟁은 치열했겠지요. 일부일처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가족 내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힘의 관계가 아들이나 남편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판국이었으니 거기에서도 대립적인 양상을 보였을 것입니다. 한 집안의 주된 남성에게 대부분의 힘이 집중되니 남성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세상에서는 여성의 입장에서 불합리하게 느낄 때가 많았더라도 개인의 의견쯤은 세상에 묻혔겠지요.

지금이야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면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상당 부분 열려 있고, 여성에게 불합리한 세상을 점점 바꿔내자는 분위기이니 이제는 통용되기 어려운 말이지요. 여성들끼리 까닭 없이 적이 될 이유도, 또는 난데없는 자매애로 뭉칠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지요. 아닌 말로, 또는 없는 말로 누군가를 저당 잡혀서는 균형을 추구하기가 어렵겠지요.

가부장 문화에 관한 한, 농촌사회의 변화가 더디다 보니 아직도 그런 말이 귓등을 스치나 봅니다. 엊그제도 들었던 그 말에 걸려 한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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