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우리나라 양돈업은 ASF로 인해 멸망을 맞을 것인가

  • 입력 2022.02.27 18:00
  • 기자명 이한보름(경북 포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한보름(경북 포항)
이한보름(경북 포항)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2019년 10월 연천에서 첫 야생 멧돼지 발병이 확인된 이후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최근 경북 상주와 울진에서도 감염된 야생 멧돼지가 확인되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 정부는 지난 1월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을 입법예고 하였다. ASF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중점관리지구 외 일반지구의 돼지사육업자에 대한 방역기준 보완에 대한 내용인데, 8대 방역시설로 불리우는 전실·외부울타리·내부울타리·방역실 및 물품반입시설 등 강화된 기준에 따른 관련 시설 설치가 주요내용이다.

시행규칙에서 경기동부, 충북, 경북북부는 중점관리지구로 추가 지정하여 강화된 방역시설을 설치 중이나, 야생 멧돼지의 ASF 확산 추세를 감안할 때 전국 모든 양돈농장 방역시설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추진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방역시설 설치의 당위성과 관련해 돼지사육농장 내부로의 질병전파요인이 방역시설 미비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주요 근거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유입원의 54.3%, 78.9%가 출입차량 또는 사람으로 인한 것이라는 추정을 내세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근거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려면 결국 농장 내·외부차량의 출입과 외부인의 농장 내부 방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다. 국내 양돈장 대부분이 1980~1990년대에 조성되다보니 계획적으로 축사를 건축한 곳이 드물다. 대부분 농장의 진입로가 협소하고 농장의 경계선은 불규칙하며 복잡한 동선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다. 또한 국토의 70%가 산지로 뒤덮여 있는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산과 구릉 등이 농장 경계와 맞닿아 복잡한 지형을 가지는 농장들이 많아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건축하지 않는 한 정부의 기준을 충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방역시설을 새로운 기준에 맞춰 짓는다고 해도 방역시설만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질병의 원인체, 즉 야생 멧돼지의 개체수를 조절하여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며,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농민들과 현장 수의사들이 국내 ASF 발병 전부터 꾸준히 해당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농림축산식품부와 방역 당국은 해당 사항에 대해 모르쇠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환경부는 한술 더 떠서 야생 멧돼지에 의한 집돼지의 ASF 전염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현재 상황을 보면 2015년 구제역 물백신 사태가 떠오른다(겹쳐진다). 당시 구제역 백신 항체형성률을 근거로 농가에 구제역 발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던 농식품부가 구제역 백신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농림축산검역본부장 이하 관련 직원들이 징계를 받았던 일이 있었다. 당시 농가와 현장 수의사들이 해당 백신의 문제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했으나 현장의 정보를 거짓으로 일축하면서 항체형성률 저하의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시키려 하다 방역 당국의 거짓이 드러났던 사건이다.

우주 행성의 지구 충돌을 다룬 블랙코미디 영화 <돈 룩 업>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 가축 방역당국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하고 비웃는 위원회, 인류의 종말을 자신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이용하는 데만 관심있는 정치인, 현장의 목소리를 비웃는 결정권자, 정보 전달보다 시청률에 관심있는 언론매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이밍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결국엔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인류가 멸망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나라 양돈업은 ASF로 인해 멸망을 맞을 것인가? 방역당국이 지금처럼 책임회피를 위한 탁상행정만 남발한다면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비참한 결말은 예정된 수순이며, 그 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방역당국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