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39] 봄은 오는데

  • 입력 2022.02.13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입춘이 지났지만 설악산의 눈바람과 양강지풍은 살을 에듯 차다. 그래도 양지바른 농막 주변과 언덕 밑에 앉으면 봄볕이 따사롭다. 먼 옛날 코흘리개 소년 시절 초가집 담벼락에 옹기종기 기대앉아 추위와 바람을 피하며 놀던 어릴 때가 문득 생각난다.

겨우내 움츠렸던 농장엔 벌써 생명들이 꿈틀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토끼풀이 싹을 틔워 과수원은 이미 푸르스름하고 복수초는 노란 꽃을 내밀었다. 냉이와 쑥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겨울을 견디고 움을 틔우고 있다. 나비도 어디서 왔는지 가끔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무들이 지난해 맺어 놓은 꽃눈과 잎눈들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곧 움을 틔울 태세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리라. 땅속의 나무뿌리는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 열심히 활동을 개시했을 것이고, 온갖 미생물과 곤충의 알들도 새로운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다. 그야말로 희망에 찬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농막 한 켠에 앉아 있으면 자연이 또다시 한해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신비로움과 역동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평안하다.

더군다나 나름 작은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로서의 자긍심도 없지 않다. 겨우내 농한기를 거쳐 새봄이 되면 또 농사일이 시작된다는 설렘이 있어 너무 좋다. 아마 이런 기분이 새봄을 맞이하는 농심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본다.

그러다 문득 현실 농부로 돌아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마냥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3년 차에 접어든 어린 사과나무 전지·정지 작업도 해야 하고 거름도 줘야 한다.

귀농 초창기에 알프스 오토메를 실패하고 재작년에 다시 식재한 시나노골드와 미야비후지 묘목도 3년 차인 금년에는 지난해보다 나무도 더 크게 키워야 하고, 내년부터 열매도 조금씩은 수확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5월 꽃필 무렵의 불청객인 냉해도 겁나고,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병충해도 더 심해진다는데 올해는 또 얼마나 극성을 부릴지 모르겠다. 유기 방제라는 것이 진짜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해 후반부에 극성을 부렸던 갈색날개매미충이 나뭇가지에 산란해 놓은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올해 또 얼마나 극성을 부릴지 모르겠다.

이런 걱정이 살짝 들기는 해도 금년 한 해 동안 정성을 다하면 나무도 더욱 굵어지고 가지도 많이 자라 내년에는 수확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도 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설렘과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