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넘쳐나는 공약과 약속, 결국엔 안 지켜질 헛말일 뿐

  • 입력 2022.02.13 18:00
  • 기자명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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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선거다. 엄청난 약속들이 공개되고 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그 약속들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제 선거에서의 공약들은 아무 말 대잔치 같은 느낌이다. 과거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어떤 약속들이 있었을까? 기억에 의존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농사를 시작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눌한 경상도 말투로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은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지금도 그 어투를 흉내 낼 수 있을 정도로 또렷이 기억한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시절, 우리나라에도 남아돌던 쌀이 개방됐다.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히 농민들에게 미안한 표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명은 뭐라고 했던 듯하다.

농사 8년 차일 때,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농가 부채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농가 부채에 대한 획기적인 여러 조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전 정부 어느 시기보다 총액으로는 농가 부채가 크게 늘어났다. 농가 부채로 인해 신용불량이 된 농민, 농가 부채로 인해 농촌을 떠난 농민도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농사 13년 차 무렵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농업 공약은 모호했지만 대단했다. ‘농수산업 관련 예산이 전체 예산의 10%가 되도록 하겠다’는 공약이었다. 9%대에서 하락하고 있던 농업예산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3년쯤 되는 시기에 7%쯤으로 떨어졌고, 노무현 대통령은 ‘도저히 안되겠더라, 약속을 지킬 수 없어 미안하다’라고 했다. 농업 예산비율은 점점 더 떨어져서 지금은 3%가 안 되는 것으로 안다.

이명박·박근혜 시기에는 농정공약을 살펴보지도 않았다. 어마어마했지만 도저히 지켜지지 않을 공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헛소리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아,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도 살펴보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것도 없었지만 솔직히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살펴보지도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거에 출마해서 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한 약속을 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계속 속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지켜지지 않아도 구속력이 있는 책임 추궁이 없으니 아무 말 공약이 이뤄지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투표를 하고 나면 그 결과가 나오고, 정당들은 그 결과를 분석해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을 분석한 결과 농민들에게 특별히 구속력이 있는 공약을 할 필요가 없음을 정당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투표결과를 보면 농민들은 계급성향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 성향으로 투표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심지어 농민들에게 적당히 헛공약을 해도, 표가 절실한 후보들에 대해 농민들은 이해를 해주는 너그러움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번 대선의 농업 부분을 포함한 공약들은 어마어마하다. 그 공약이 심하다 못해 ‘너무한 거 아니냐?’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공약을 말하는 후보들을 보면서, 농정공약이 꼭 허경영 후보의 전체 공약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문제는 이번만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 또한 이미 농업 부분에서는 기성세대가 된 필자도 벗어나기가 힘든 일인데.

힘들겠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아직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으니, 실현 가능성이 높은 공약을 한 후보를 챙겨보자는 부탁을 하고 싶다. 필자의 경우에는 농민에게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후보보다는 기존의 농업예산을 바르게 쓰겠다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고, 중장기 우리 농업의 계획을 짤 구조를 만들겠다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다. 관료가 아닌, 관료 성향이 아닌 농업의 여러 실물에 밝은 인물을 등용해서 농업예산을 바르게 집행하면서 농축수산물의 유통구조를 바꿔 나가겠다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싶다. 아직까지 돈을 더 주겠다는 후보는 봤는데 농축수산업의 생산과 유통에 있어 골간을 손보겠다는 후보는 나오지 않았다. 돈을 더 주겠다는 것보다 현장의 농민들은 헛돈 쓰는 것이 더 싫고, 형편없는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농산물 유통을 싫어하는 것이 확실하다. 지켜지기 힘든 돈 공약보다 싫은 것을 먼저 치우고, 돈을 쓰겠다는 후보가 우리 농민들에게는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별 의미가 없을지라도, 지키지 못할 대농민 약속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 말은 전해주고 싶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국민들에게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해 먹어도 욕을 엄청 듣거나 끝이 안 좋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불행한 대통령이 많은 건 거짓말을 많이 해서 그런 듯하다. 아무리 급한 선거 시기로서니, 헛말 공약 그만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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