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2022년이라는 시기에 갖는 기대

  • 입력 2022.02.13 18:00
  • 기자명 정성숙(전남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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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숙(전남 진도)
정성숙(전남 진도)

오전 10시 넘도록 들에 나가지 않으면 영락없이 나미(2013년생 진돗개)가 나를 부른다. 콧바람을 쐬러 가자는 것이다. 낯선 사람이 왔다고 알리는 짖음과 나를 부르는 짖음이 다르다. 나미와 돌쇠(4살, 나미 아들)는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있는 현관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다니는 눈길이 심히 부담스럽다. 1시간의 짬을 내서 나미와 돌쇠를 트럭에 태우고 나가 들판에서 잠깐이나마 목줄 없이 뛰놀게 해줘야 비로소 맘이 편해진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개를 키우는 목적은 거의 영양보충을 위해서였다. 마당 한쪽에 돼지나 닭을 키우다가 특별한 날 모처럼 목구멍에 기름칠을 했었다. 농촌의 특성상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사는 집에 외부의 수상한 낌새를 개가 알리도록 했다가 여름 복날이 되면 식구들 몸보신용으로 잡아먹었다. 고기와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지구 한쪽에서는 여전히 배를 곯는 사람들이 숱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비만이 사회적 비용으로 추가되고 있다. 많이 먹는 모습이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TV 예능으로 즐기는 시대다. 시장에 가면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는 고기를 언제든 사먹을 수 있으니 굳이 개를 잡아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병든 부모는 요양원에 모시더라도 방안에서 개와 함께 뒹굴면서 생활하는 반려견 인구가 1,500만이란다. 개를 키우는 목적이 달라졌다. 사람이, 사람한테 받은 상처를 위로받기 위해 개를 키우고 있다. 노동에 지친 몸을 보하기 위해 개를 키우던 때를 지나 마음을 치유하고 개들과 정서적 풍요를 꿈꾼다. TV와 유튜브 그리고 각종 매체에 나오는 개들의 영상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시각을 바꿔 놓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던가. 개를 눈여겨 들여다보니 하는 짓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사람과 교감하는 정도에 따라 사람의 재능을 능가하기도 한다. 개의 후각은 사람으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 TV 화면에 보이는 인명구조견의 활약은 경외감까지 든다.

육아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 어렸을 때와 개들의 공통점을 자주 발견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나한테 의존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른다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내내 나를 그리워하거나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모양새를 보면 귀찮고 힘들더라도 보호자로서의 의무감이 생긴다. 내가 보살피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생명체임을 실감한다.

재작년에 발생한 코로나라는 전염병은 지구촌 모든 사람을 긴장시켰다. 변화무쌍한 기후의 이상 현상까지 겹치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식량자급률 21%는 각자의 삶이 언제든 위기상황에 처할 수 있기에 너무나 불안한 정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을까? 농업이 국가예산편성에서 소외되거나 뒷전이었던 행태들이 달라지고 있는 과정일까, 2022년이라는 시기는.

그래서 멀지 않은 날에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가 다수의 사람들 생각에 한 자리 차지하게 될까? 1년 동안 지은 농사를 생산비는 고사하고 갈아엎던 때도 있었다고 씁쓸하게 추억하는 날도 있게 될까? 햇빛에서 일하느라 생긴 기미 때문에 괜히 주눅 들지 않는, 국민들의 식량을 돌보느라 생긴 훈장쯤으로 여길 수 있는, 자긍심 가진 농민의 모습을 그려봐도 될까?

나와 많은 사람들이 시대 상황에 따라 개를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었듯 코로나 시국 덕분에 식량안보에 대한 다수의 인식이 달라져서 농민을 대하는 시선에 변화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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