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당신의 생각을 알고 있다

  • 입력 2022.02.13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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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농정을 오래 겪은 베테랑 농민일수록 농정당국이 ‘스스로 내놓는 대체제’에 큰 거부감을 품는 걸 종종 본다. 그 대체제라는 것이 기존의 핵심장치를 제대로 대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능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한 탓이다. 보통은 이때 발생하는 저항의 세기와 농정당국의 대응을 통해 그것이 단순한 실정인지, 의도적 노림수인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지켜본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에 대한 공격과 정부의 대안은 후자로 보인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최근의 선례도 있다. 농가 소득을 보호하는 확실한 안전장치를 굳이 망가뜨리려 하는 점, 정부 스스로 이를 거둬들이려 하는 점, 농민들이 대안의 실제 작동 가능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점까지 똑같다.

정부가 기준값을 정하고 시장가와의 차이를 직불금으로 지원하는 ‘쌀 목표가격’이란 제도가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장치는 직불금 제도를 개편한다는 미명 하 모두의 우려와 반발 속에 2년 전 소멸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건 결국 ‘자동’으로 발동하지 않는 자동시장격리제였다. 당시 정부의 안을 마주한 농민들은 쌀값 지지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축소될 여지가 있다며 강하게 우려했고, ‘약속을 지킬 리 없다’며 분개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과연 그 말대로, ‘농민값’을 지킬 생각이 없는 정부의 속마음은 최근 여지없이 현실로 드러나 온갖 파장을 내고 있다.

적정 가격 지지를 통한 생산비 보장은 ‘지속가능한 농사’의 핵심 요소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 점에서 현재 낙농업을 견인하고 있는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의 가치와 상징성은 그 어느 정책에도 비견할 수 없다. 축산의 영역을 넘어 우리 농업 전체 어디를 찾아봐도 농민의 생산비를 조목조목 따져 수요자의 구매가를 규정하는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이라고 한다면 사라진 쌀 목표가격제도처럼 목표가격(최저가격)을 정해 그 아래로 떨어졌을 때 차액을 보전하는 형태 정도가 되겠다. 이미 전북과 충남, 그리고 전남 일부 지역에서는 이대로 농업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속에 지자체 고유의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자급률의 하락, 식량주권의 상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오히려 세종에선, 쌀 목표가격에 이어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가 지켜온 높은 가치마저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이를 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가.

‘농산물 가격을 지킬 의지가 없다’고 밖엔 해석할 수 없다. 최근 5년간 평균 원유수취가격은 전혀 상승하지 않은 데 반해, 유업체의 출고가는 4.8%, 유통비용은 10.6%가 올랐다. 이웃나라 일본의 원유수취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더 높지만, 소비자가 접하는 가격은 더 싸다. 무엇보다 이 정도 수취가에도 낙농가는 매년 픽픽 쓰러져 나간다. 우윳값을 내려야겠다는 목표를 잡았다면, 가장 먼저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는 어린 아이도 알만한 부분이란 얘기다. 적어도 ‘낙농업의 모든 주체가 고통을 함께 감내해보자’라고 이야기했다면 이 장치를 건드렸을 때 농가들이 이렇게까지 반발하지는 않았을 거란 점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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