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RPC 운영, 농가 실익이 없다

수매가 관련 농민 불만 여실

자생력 부실한 중앙회 RPC

합리적 경제사업 설계 필요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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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이성희)가 운영하는 거점통합RPC(미곡종합처리장)가 농민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원곡 시장에서 가격 선도 역할을 전혀 못 한다는 지적인데, 중앙회 양곡사업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중앙회가 운영하는 RPC서 지역 최저 수매가 책정?

전북 익산시농민회(회장 이근수)는 최근 익산통합RPC를 항의방문했다. 익산통합RPC가 2021년산 벼 수매가를 지역 최저가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합RPC 측은 “중앙회에서 내려온 가격”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농협중앙회는 농식품부의 정책기조 아래 2016년부터 지역 통합RPC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익산·진천·무안·안동·부여 5개 통합RPC에 농협경제지주가 평균 8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RPC들의 운영을 맡고 있는 게 농협경제지주의 자회사인 농협양곡㈜(대표이사 나병만)이다.

진천(독자적 가격결정)을 제외한 4개 통합RPC의 수매가는 농협양곡 내 ‘벼수매가격결정위원회’에서 정한다. 경제지주·지역조합장·전문가·민간유통인 등 6~8명이 모이는 일회성 조직인데, 먼저 형성된 도별 평균가를 기준으로 수매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결정 시기가 12월로 매우 늦은 편이다.

익산통합RPC에서 지역 최저 수매가가 나온 건 전북에서도 익산지역 쌀값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농협양곡은 익산통합RPC의 수매가를 ‘전북’ 평균인 6만6,300원으로 결정했는데, ‘익산’지역의 보편적인 수매가는 다른 시·군보다 확연히 높은 6만7,000~6만8,000원선이었던 것이다.

김영재 익산시농민회 부회장은 “중앙회가 지역 RPC에 개입하는 건 RPC 경쟁력을 높이고 가격을 더 지지해주기 위한 건데 오히려 최저가를 매기고 있다”며 “시·군마다 재배조건이 다름을 감안하면 최소한 도 평균가격이 아닌 시·군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매가 결정 시기도 문제다. 정상철 무안군농민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무안통합RPC 수매가가 6만3,500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수확기 당시 6만5,000원까지 형성됐던 시장가격이 점점 떨어지니 가만 지켜보다가 6만1,000원까지 떨어진 뒤에야 수매가를 확정한 것”이라며 “통합RPC가 선도적으로 충분한 수매가를 결정했다면 시장 전체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역할미흡을 지적했다.


중앙회 양곡사업 및 RPC 운영, 농민조합원 중심 개선 필요

중앙회 RPC가 ‘선도적으로’, ‘높은’ 수매가를 책정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농협경제지주의 사업구조에 있다. 농협양곡은 경제사업 중에서도 가장 수익성 낮은 ‘양곡’을 ‘전담’하는 회사면서도 독립된 자회사인 탓에 일체의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겨우 도별 평균가를 기준으로 수매가를 정하면서도 연간 영업이익이 –20억원인 실정이다.

나병만 농협양곡 대표이사는 “마음 같아선 정말 수매가를 많이 드리고 싶지만 주식회사라 경영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반 농협RPC는 신용사업 이익금으로 손실을 메울 수 있지만 우린 본사(농협경제지주 또는 금융지주)에서 도와주면 상법 위반이 된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그렇다고 모든 RPC를 지역농협에 맡겨놓기도 난감하다. 지역농협들 중에서도 RPC 운영으로 감당 못할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으며, 농협중앙회의 브랜드가치와 품질·물량 관리능력으로 대형 거래처를 붙잡을 수 있는 기능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농협양곡 스스로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 대형 가공업체 납품선 유지와 온라인 소매판매 확대 정도 외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농협경제지주 차원에서 직접가공사업 등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숨통을 터주거나, 농협중앙회 경제사업구조 자체를 통째로 재설계해야 해법이 보이는 상황이다.

단, 익산통합RPC의 최저가 수매는 조금 다른 문제다. 신용사업 이익금을 끌어쓸 수 있는 지역농협RPC는 제쳐놓더라도, 민간RPC보다도 못한 가격이 나왔다는 건 농협양곡 가격결정 구조에 하자가 있다는 뜻이다. 협동조합의 자회사인 이상 적자 부담을 안고서라도 이를 합리화해야 할 책무가 있다.

무엇보다 수매가 결정에 지역 농민 의사를 반영시킬 구조가 시급하다. 농협양곡의 통합RPC 운영이 농가소득 제고는 고사하고 RPC와 농민을 단절시키는 효과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권혁주 부여군농민회 사무국장은 “부여통합RPC가 대규모 적자 사고를 내고 중앙회에 매각됐는데, 그 이후 수매가나 모든 결정에 부여 농민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어디다 문제제기를 해야 할지 대상 자체가 모호해져 버렸다”며 통합RPC의 협동조합적 정체성에 의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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