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계획을 위한 반성, 반성을 위한 계획

  • 입력 2022.01.30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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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새해다. 또 새해가 와버렸다.

해가 새로 바뀌는 걸 수십 년째 겪으면서 수십 번 새 다짐을 해보지만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조금씩 달라지고 있잖나 자위할 뿐이다. 그래도 반성과 새 다짐은 하는게 맞다.

그래서 일단 반성부터.

요즘 자꾸 창피한 생각이 드는 내 모습이 있다. 어찌 되었든 십수 년 전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유기농업을 한다고는 있는데 내가 정말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게 맞는가 창피함이 슬금슬금 생기기 시작한다.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는 유기농업을 십수 년 동안이나 하고 있는 사람이요’ 내세우면서 내 부족한 점이나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 뒤에 감추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주장하고 있는거 같다는 써늘한 느낌. 일종의 선민의식이다. 내가 이스라엘 족속같은 놈이라니. 농사를 할수록 내가 농사를 못하는 놈이라는게 각성이 되는데 심지어 유기농업이라니.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나는 남들이 안하는 농사에 몸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늬들이 농사를 알어?’ 이런류 의 적잖게 솔직하지 않거나 오만한 모습들.

두번째는 시류에 쉽게 휩싸이는 내 모습이다. 농업판에 2~3년 주기로 바람을 일으키는 각각의 아젠다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모습. 시기별로 흥행하는 아젠다에 한마디 아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남들에게 무시당할 것 같은 조바심. 뿌리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보다는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쫒아가려는 모습.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 싶지만 기왕에 하나 더 꼽자면 쓸데없는 똥고집이다.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심지를 지키는 것과 눈과 귀를 꽉 막아버리는 똥고집과는 다르다는 것. 상대방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서툴고 반대로 상대방을 설득할 줄도 모르는 모습이다. 기껏 이솝우화 여우같이 높이 달려 못 먹는 포도를 신 포도일 거 같으니 안 먹는다 핑계나 대고 말이다.

이 자기반성이란 게 혼자 스스로 잘 되는 게 아니더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 나도 저러지 않나?’ 반면교사다. 그리고 남들이 내게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아! 내가 그랬나?’ 다 남들 덕에 세상을 사는 거다.

반성 다음은 계획이다. 마음다짐 정도가 맞겠다.

우선 명분 뒤에 숨지 말아야지. 십자가는 자기 앞에 내세우는 게 아니라 자기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맞지. 농사를 잘하지는 못해도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이 나이에는 그거 말고는 없는 것이니 오만은 버리고 겸손으로. 어떻게든 농사로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도록. 올해는 그동안 이래저래 내뱉은 말들 책임지는, 진짜로 실행하는 출발점으로.

두번째는 좀 혼란스럽긴 하다. 농업계 내에 수많은 아젠다들 중 중요하지 않는 게 있겠는가마는 전체를 꿰뚫는 가장 중요한 숙제는 있다고 본다. 농사를 할수록 겪게 되는 숱한 모순들을 풀어갈 핵심 실마리는 중요한 한두 가지로 귀결이 되는데 내 판단은 농지 문제가 그중 하나다.

몇년 전부터 접하게 된 공익직불제, 농민기본소득 혹은 농민수당으로부터 최근 가장 핫한 탄소중립까지 농지제도의 근본적 수술 없이는 사상누각이 되기 쉬워 보인다. 심하게 곪은 고름을 짜내고 그 위에 돋은 새살이 진짜 새살이지. 아무튼 이 경우는 농업계 오피니언 리더분들이든 주력 단체분들이든 가닥을 잡아들 주신다면 내 마음 정리가 많이 수월할텐데. 힘이 약하고 상황이 불리할수록 전선을 정리하고 좁혀야 그나마 승산이 생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2차대전 때 히틀러가 소련 쪽에 전선 하나를 더 안 만들었으면 독일이 승전국 되기 쉬웠을 거라. 주변 도움을 받아서라도 약하디 약한 내 힘을 집중할 정확한 지점 찾기를 했으면 좋겠다.

세번째 반성이 진짜 반성이지 싶다. 꽉 막힌 변비처럼 막힌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나가면 명분 뒤에서 소신껏 걸어 나올 수도 있고 핵심 문제를 찾아내서 거기에 집중력을 쏟을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정말 쉽지 않지만.

선배 어른들의 잔소리는 피와 살이 되고 후배 동생들의 쓴소리는 뼈를 굳히나니. 그래서 열린 귀와 유연한 마음으로 무장하고 싶은 욕심을 올해 계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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