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본격적인 설 명절 연휴를 닷새 앞둔 지난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위치한 서귀포안성우체국 앞은 인근 농가에서 가져다 놓은 수백여 개의 택배 상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노동조건 개선,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전면 파업에 나선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이 해를 넘겨 이어지며 한라봉과 레드향, 천혜향 등 만감류 출하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자 설 대목을 앞둔 농민들이 우체국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에, 설 명절 출하 물량까지 일시에 몰리며 말 그대로 ‘물류대란’이 일어난 것이다.
설 선물용 감귤 택배 발송을 위해 우체국을 찾은 한 농민은 숫자 75가 적힌 순번표를 내보이며 “번호표를 받은 순서에 따라 접수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나와 기다렸다”며 “내가 아는 택배사들은 설 전 배송이 모두 마감됐다. 보통 (택배를 이용하면) 4,500원~5,000원이면 보냈는데 지금은 한 상자당 7,000원까지 (배송료가) 나왔다. 만감류는 값이라도 좋다고 하지만 2만원 안팎의 밀감은 팔아도 남는 게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트럭 적재함에 한라봉을 싣고 와 순번을 기다리던 농민은 “오전에 이미 5톤 차량으로 한 차를 보내고도 (우체국 앞에) 쌓여 있는 게 이 정도”라며 “포장해놓은 만감류는 제때 발송하지 않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요금이 비싸더라도 (우체국을 통해) 보낼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날 안덕면 덕수리에 위치한 감귤농장에서 만난 송인섭(62)씨도 “지금 들어오는 주문 대부분이 설 선물용인데 명절 전에 도착하게끔 택배를 보낼 수 없어 최근엔 아예 주문을 받지 않았다”며 크기별로 선별 작업을 하다 멈춘 한라봉과 레드향을 꺼내 보였다.
또, 그의 작업장 한 편엔 포장이 완료돼 택배 송장까지 붙인 한라봉과 레드향 상자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송씨는 “하우스에도 수확하지 못한 한라봉이 30%가량 남아 있다”며 “남은 물량은 설 명절 이후에나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하루에 약 15톤에 달하는 만감류를 취급하고 있는 안덕농협 농산물유통사업소의 강인호 소장은 “만감류의 경우 설 명절 전에 일정 물량이 나가줘야 수급 조절이 돼서 설 이후에도 괜찮은 가격을 형성할 수 있는데 택배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출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략 전체 물량의 70% 정도만 소화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우리 농협에서도 하나로유통이나 대형마트, 일반 상회 등으로 꾸준히 출하하고 있지만 물량은 여전히 적체되고 있다”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28일에 돌입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은 한 달째를 맞고 있지만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여전히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역본부는 지난 25일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J대한통운은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제정된 표준계약서에 ‘당일 배송’, ‘터미널 도착상품의 무조건 배송’ 등 과로를 낳는 독소조항들을 포함시켜 또다시 택배노동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며 “파업 한 달이 다 돼가도록 설 택배대란에 따른 국민 불편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CJ대한통운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번 설 택배대란의 책임은 CJ대한통운과 CJ재벌 총수 이재현에게 있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바라건대, 택배노동자도 농민도 함께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제주에 봄기운을 전하며 활짝 핀 매화처럼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